깨알만한 부속도 손으로… 최고 만드는 최고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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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시계’ 스위스 파텍필립 공장 가보니

지난달 27일 오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본사에서 시계 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페르네 프랑크 씨가 시계 부품을 손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100년 넘은 시계도 부품을 만들어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김성모 기자 mo@donga.com
지난달 27일 오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본사에서 시계 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페르네 프랑크 씨가 시계 부품을 손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100년 넘은 시계도 부품을 만들어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김성모 기자 mo@donga.com
지난달 27일 오후(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파텍필립 본사 4층의 구석자리. 찌를 듯 날렵한 코에 깊은 눈이 인상적인 50대 남성이 500원짜리 동전만 한 ‘루페(눈에 끼는 세공용 돋보기)’를 한쪽 눈에 착용하고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는 치과 연장같이 생긴 공구들이 널려 있었다.

남자는 갑자기 뭉뚝한 손으로 활처럼 휜 철사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책상 끝에 매달린 재봉틀처럼 생긴 기계에 대고 톱질하는 시늉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다 대고 뭐하는 거냐”고 묻자 그는 기름때 묻은 손으로 루페를 건네줬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계의 조임틀 안에 쌀알의 4분의 1보다도 작은 시계 부품이 들어 있었다. 21년 경력의 페르네 프랑크 씨는 “더 작은 부품도 다 손으로 만든다”며 웃으며 말했다.

스위스의 세계적 시계회사 파텍필립이 자사의 시계 제조 공정을 한국 언론에 최초로 공개했다. 이 회사 제품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재위 기간 1837∼1901년)이 평소 즐겨 착용해 ‘여왕의 시계’로 불리기도 했다. 공장에서 만난 이브 카바디니 부사장은 “파텍필립 시계의 민낯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시계의 얼굴로 불리는 다이얼 공장부터 시계의 ‘심장’ 역할을 하는 구동계(무브먼트)를 만드는 공장까지 다섯 곳을 숨김없이 보여줬다.

파텍필립은 시계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최고급 시계 회사다. 시계 업계에서 유일하게 4대째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열쇠로 태엽을 감지 않아도 시계가 작동하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1815년)했으며, 현존하는 시계 중 가장 복잡한 고난도 기술(별자리표, 계절·달 모양 표시, 온도계 등)이 접목된 시계(칼리버89)를 만들었다.

특히 파텍필립이 8년 연구 끝에 개발한 ‘스타 칼리버 2000’ 회중시계는 ‘웨스터민스터 카리용’과 ‘일몰과 일출 시간 표시’ 등 6개의 특허 기술을 가지고 있다. 카리용은 런던 웨스터민스터 지역에 있는 시계 빅벤을 뜻하는데, 스타 칼리버 2000은 4가지 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빅벤의 종소리를 구현한다. 이 시계에는 4년에 한 번씩 오는 윤년까지 자동으로 맞춰주는 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현재 파텍필립은 1년에 5만여 개의 최고급 손목시계를 만든다. 파텍필립의 시계에는 개당 600∼2000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 부품들을 모두 자사 공장에서 직접 만든다. 놀라운 점은 금이나 황동 같은 금속이 재료인 부품의 가공을 모두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손목시계의 원판에 숫자를 만들어 넣는 공정만 500가지가 넘는다.

이런 고난도의 제조 공정 때문에 파텍필립에서는 경력이 수년 이상 되는 시계 전문가들만이 일을 하고 있다. 금속 원판에 문양을 새기는 일을 하는 페르난도 아브레유 씨(45)는 “우리는 시계를 만들면서 예술을 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최고의 시계를 만들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파텍필립 제품은 국내의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4월 8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에 문을 연 첫 매장은 개장 한 달 만에 매출 10억 원을 올렸다. 카바디니 부사장은 이에 대해 “한국 시장에는 단순히 재력이 있어서 시계를 사는 게 아닌, 기술적인 면을 많이 아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제네바=김성모 기자 mo@donga.com
#시계#스위스#파텍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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