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19>납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납작 ―정다운(1977∼ )

은퇴한 아버지는 유명 카페 가맹점을 냈다
커다랗고 똑같은 간판이 싫단다
하지만 아무도 간판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앱을 이용하지

어쩌다 한 번 이메일을 받았다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어도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는 말
널 치면 네가 다니는 회사 네가 먹은 저녁이 뜨는데
너의 이름은 유별나고 거칠고 물고기처럼 덥석 무니까
정다운 원룸이나 어린 여배우가 나오는 내 것과는 아주 다르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 길을 머릿속으로 다시 걷는 거
지하철역에서 포장마차를 지나
아파트에 둘러싸인 움푹한 공터까지 가면
아무도 없는 새벽의 낮은 흥분과
누가 베란다 밖을 내다 볼 것 같은 불안이 거기 있다

너는 꿇어앉고 나는 그 마음을 자꾸 묻고
그런 게 대체 어디 있다고
우린 그렇게 어렸고 그렇게 들쑥날쑥했다

사람들은 목을 구부리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납작한 지도 위를 잘도 걸어 다닌다
이제 기억은 골목처럼 구부러지는 게 아니라 목록처럼 길어져서
인기 많은 아빠의 가게가 있고
검색되지 않는 내가 저 밑에 있고
너는 몇 쪽쯤 찾아보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유명해야 유명해질 수 있다’, 영국 작가 조지 기싱의 1891년 출간 소설 ‘신 삼류문인의 거리’에 나온 말이다. 유명한 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한번 이름나야 이름이 더 알려지고, 더 알려진 이름은 더욱더 알려지게 마련이다. 기싱 시대에도 그랬거늘 하물며 이 인터넷 시대에는 ‘아무도 간판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도앱을 이용하지’. 손님은 카페 간판에 담긴 업주의 마음이나 꿈 같은 건 관심 없다. 이미 ‘유명 카페’가 올라 있는 ‘지도앱’만을 신봉한다. 이렇듯 유명하다는 것은 장사에도 아주 이익이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음식점이나 어떻게든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 한번 올리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

외부를 향한 공적 영역뿐 아니라 마음이나 추억 등의 개인적이고 내적인 영역도 인터넷에 내준 사람들이 많다. 옛 애인이나 친구가 그리우면 이 시 3연의 화자처럼 추억의 장소를 기억 속에서 더듬거나, 실제로 찾아가 하염없이 거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데 ‘너’는 대뜸 검색창을 두드려보는 사람. 왜 ‘나’를 만인의 ‘근황’과 ‘소문’의 긴 목록인 검색창에서 찾는가. 그리고 뭘 잘했다고 못 찾겠노라는 메일을 보내는가. 검색창에 뜨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건가. 영혼 없이 나를 찾지 마오. 나는 2차원의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오!

황인숙 시인
#납작#정다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