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맛대로 시행령 손볼땐 재정낭비-개혁후퇴 불보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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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
靑 ‘시행령 사수’ 여론전… 부처에 행정입법권 침해사례 보고 지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정부가 만든 시행령의 수정을 국회가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대통령이 실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향후 여론 추이를 면밀히 살펴 정치적 실익을 따져보겠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청와대가 각 부처에 ‘국회법 개정으로 정부의 행정입법권이 어떻게 침해될 수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도 여론전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 국회법 개정의 문제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국회와 장기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당청 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靑, “지금도 행정부 권한 침해 심각”


국회가 행정입법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가재정 낭비다. 국고보조금 사업은 대부분 기본법인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체적 국고보조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체 예산과 사업 진행 추이 등을 살펴 매년 국고보조율을 조정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국고보조율을 상위 법률에 못 박아 발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마다 정부는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법률에 명시된 국고보조율을 삭제하고 시행령을 통해 정하도록 수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가 시행령의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국고보조율에 대한 의원들의 간섭이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정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예산 부담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의 차질도 우려된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누리과정의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삭제되면 중앙정부 재정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육교부금을 활용하지 못해 누리과정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한 근거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시행령의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과도한 의원입법으로 정책의 탄력성이 떨어지는데, 국회법 개정으로 경제정책이 적기에 시행되지 못하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원칙’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 깊어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 거부권 행사로 여당과 정면충돌을 택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상 정면 돌파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대통령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법무부와 법제처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이는 삼권분립이란 대원칙의 문제다. 당청관계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가 재의결을 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원칙을 강조하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비박(비박근혜)계인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미 지난달 29일 본회의 때 (재의결 요건인) 재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됐다”며 “거부권 행사로 국회가 재의결 절차를 밟을 경우 다시 통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청와대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여론의 향배는 청와대의 고민이다.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하더라도 대부분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정의 문제’인 만큼 당장 국민의 피해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점도 청와대의 숙제다.

더욱이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와 공석인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여야 모두와 갈등을 빚는 선택을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이후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차기 과제’로 못 박았다.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된 만큼 여야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6월 국회에서 어떻게든 경제 활성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점도 박 대통령의 고민을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egija@donga.com/세종=손영일·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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