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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교육개혁 다시 필요…이념-정파 초월한 기구로 사회적 합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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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교육개혁 다시 필요…이념-정파 초월한 기구로 사회적 합의를”

심규선 대기자 입력 2015-06-01 03:00수정 2015-06-01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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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 책 낸 안병영 前 교육부장관 《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두 개의 자격증이 있다. 교육평론가와 정치분석가. 높은 교육열은 한국의 오늘을 만든 듬직한 보루이자 건너지 못할 깊은 해자(垓字)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교육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날짜로 기억되는 교육개혁은 ‘7·30’과 ‘5·31’ 두 개뿐인 듯하다. 7·30교육개혁은 1980년 7월 30일 신군부가 발표한 것으로 과외 금지와 본고사 폐지, 졸업정원제가 골격이다. 5·31교육개혁은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가 초중등교육, 대학과 대학입시, 평생교육 분야 등을 망라한 종합개혁 세트였다. 7·30개혁이 일거에 환부를 수술하는 양방적 단기적 충격적 접근이었다면 5·31개혁은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한방적 점진적 철학적 성격이 강했다.》

20년 전 5·31교육개혁의 최고 집행자였던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 그는 5·31개혁이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둔 교육개혁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더 큰 틀에서, 더 미래지향적으로, 더 거국적으로 교육개혁에 나설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5·31’은 교육 패러다임 바꾼 혁명

최근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5·31교육개혁 그리고 20년’이라는 책(사진)이 나왔다. 저자는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74·연세대 명예교수)과 그의 제자이자 정책 참모였던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안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1995년 12월∼1997년 8월),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2003년 12월∼2005년 1월)을 지냈다. 성격이 다른 정부에서 두 번이나 교육 수장을 지낸 것은 드문 경험이다. 처음에는 5·31개혁을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였고, 두 번째는 개혁의 변용을 포함해 평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지난달 28일, 그를 만나봤다.

―책을 쓴 이유부터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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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교육개혁은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꾼 한국 교육사의 분수령이다. 2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료도, 기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당시 주요 정책을 직접 집행했던 장관으로서 더 늦기 전에 5·31개혁을 정리하고 싶었다. 장관이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성찰적 미래지향적으로 기술하려고 애썼다. 5·31개혁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제시하고, 그 후 어떻게 승계 변용되었는지, 좋은 개혁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도 제언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안’의 경험을 ‘밖’의 눈으로 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책에서는 ‘나’를 지우고 ‘안병영’이라고 썼다.

―5·31개혁이 다른 개혁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전체 교육체계의 구조적 개혁을 시도한, 즉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한 큰 틀의 새판 짜기였다는 점,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지식사회화 등 이른바 문명사적 전환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전략적 차원의 개혁이었다는 점,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 최초의 민주정부 대통령이 주도한 강력한 교육혁명이었다는 점, 교육재정으로 국민총생산(GNP)의 5%를 확보해 많은 정책과제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판을 크게, 멀리 보고, 거국적으로, 실천에 옮겼다는 뜻이다. 김영삼 정부는 5·31개혁을 포함해 네 차례에 걸친 개혁 방안에서 120개의 교육개혁 과제와 로드맵을 제시했다. 학교생활기록부 도입, 초중고교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방과 후 학교 활성화, 초등영어교육 시작, 직업교육 강화, 대학설립준칙주의 시행, 대학 학부제 유도, 교육정보화 기반 구축, 평가와 행정·재정 연계, 유아교육의 공교육체제 편입, 지방교육자치제 확대, 교육예산 GNP 5% 확보 등 아직까지도 한국 교육의 골간을 이루는 제도가 많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안 전 장관은 120개 과제 중 87개(73%)를 김영삼 정부가 끝나기 전에 시행했다고 분석했다.

교사-학부모 소외된 절반의 성공

―5·31개혁에 대한 총평은….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나 ‘상대적’으로 성공한 개혁이라고 평가한다. 기존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근거한 획일적, 공급자 위주의 교육체제를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의 열린 교육체제로 바꾸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안 전 장관은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 교육개혁위원회 청와대 교육부의 역동적 협력관계를 들었다.

―그렇지만 비판도 없지 않다.


“비판론자들은 5·31개혁이 신자유주의를 과도하게 추구하고 경제논리가 교육을 지배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표적 사례로 대학설립준칙주의, 국립대학 법인화, 특수목적고 및 자립형사립학교 등을 제시한다.”

그는 이런 주장이 5·31개혁을 ‘시장주의’라는 단일 잣대로 거칠게 재단한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대적 실패 요인’을 드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5·31개혁은 근본적으로 정부 주도의 하향적 개혁이었다.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사와 학부모 등이 소외됐다. 또 관리능력이 부족한 중간단체들, 즉 교육청이나 학교에 자율을 주다 보니 문제가 꼬이면서 평가 등을 앞세워 다시 개입하는 ‘권위주의적 자율화’로 이어졌다. 정권 출범 후 1년을 그냥 보낸 것도 아쉽고, 보상체계와 피드백도 부족했다. 앞으로의 개혁은 이해당사자들의 협치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5·31개혁은 수월성에 더 무게를 둔 것도 사실이다. 수월성과 형평성은 택일의 가치가 아니라 보완재로 봐야 한다. 새로운 모델로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민주적 복지국가가 중시하는 사회적 형평성을 두루 아우르는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가 참고가 될 만하다.”

사람 만드는 인성교육 강화해야

―지금 교육개혁을 한다면 어떤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나.

“20년 전과 지금은 국민의 생활수준, 민주화의 진전, 문명사적 흐름, 국제정치·경제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 교육은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인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데 실패했다. 이런 교육으로 21세기 한국을 건설할 수 없다.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과 상생의 조화’ ‘인성교육의 강화’가 우리 교육의 미래 방향이다.”

그는 문민정부 이후의 교육개혁은 미시적 부분적 미봉적 개혁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념적 틀과 집단적 이기심에 갇혀 교육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의 설치를 강력히 제안했다.

“5·31개혁 때는 교육개혁에 대한 묵시적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합의 도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념적 양극화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미래 비전과 거시적 정책 방향, 주요 쟁점에 대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협의체 구성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 기구는 정권의 수명을 넘겨 활동해야 한다. 활동기간을 9년으로 하고, 위원은 3년마다 3분의 1씩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

안 전 장관은 책의 마지막에 보론(補論)을 두고 ‘성공적 개혁의 조건’ 7가지를 제시했다. 장기적 조망(역사의식과 비전), 전체 사회와의 연관구조 파악, 점진적 개혁 추구(이상과 현실의 조화), 지도자의 결단, 사회적 합의 추구, 역사적 시간의 선택, 집행능력 확보다. 상아탑과 현장을 오가며 얻은 사색의 결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현재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마음속으로 꼽아본 결과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 “이명현의 창안, 박세일의 조정 능력 뛰어났다” ▼

‘5·31 개혁’ 키플레이어 35명 인터뷰


안병영 전 장관의 책은 다른 정책분석집과는 달리 ‘사람’에 주목한 것이 특징이다. ‘살아있는 정책분석’을 위한 시도라고 했다. 그는 5·31교육개혁에 관여했던 ‘키 플레이어’ 35명을 직접 인터뷰해 책에 녹였다.

그는 5·31의 1등 공신은 ‘교육대통령’을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4차례의 교육개혁안을 직접 보고받았는데 이런 극화(劇化)된 광경이 언론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강력한 정치적 효과와 개혁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창안, 조정, 집행의 트로이카로는 당시 이명현 전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후에 교육부장관)과 박세일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후에 사회복지수석), 그리고 본인을 꼽았다. 당시 분위기는 창안하는 교개위는 이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고, 집행하는 교육부는 현실에 안주하기 쉬우므로 청와대는 이를 조정할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경세가 스타일인 이명현과 박세일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군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안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인 이해찬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줬다. 김대중 정부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5·31개혁의 정책과제를 상당수 그대로 승계했다. 이는 이해찬 장관이 교육 관료들과 60여 차례나 정책협의를 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이 장관이 정부의 성격과 관계없이 5·31 정신을 이해하고 수용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안 전 장관이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장관을 맡은 것도 ‘사람의 중요성’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책은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이념 과잉과 목표의 혼란, 아마추어리즘에 빠졌다고 박하게 평가했다.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사회적 합의#안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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