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회복’ 마종기, 시집 출간…“비바람 속 마지막 평화를 믿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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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열한 번째 시집을 출간한 마종기 시인. 지난해 한국 국적을 회복한 그는 시 ‘국적 회복’에서 ‘너무 늦었다는 말까지’라고 썼다. 그는 “늦었지만 그래도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 국적은 한국이다”고 했다. 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26일 열한 번째 시집을 출간한 마종기 시인. 지난해 한국 국적을 회복한 그는 시 ‘국적 회복’에서 ‘너무 늦었다는 말까지’라고 썼다. 그는 “늦었지만 그래도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 국적은 한국이다”고 했다. 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아무도 없는 광대무변의 외로움이/무시로 나를 차고 흔들어 굴렸지만/먼지와 폭풍과 천둥의 비바람 속,/그 마지막에 남는 평화를 믿었다./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그래도 다 괜찮다는 말이, 확실히 내 가슴 한복판에서 맑게 들렸다./정말이다, 너무 늦었다는 말까지/나를 그냥 가볍고 푸근하게 해주었다.”(시 ‘국적 회복’ 중에서)

마종기 시인(76)이 지난해 한국 국적 회복 후 첫 시집이자 1959년 등단 이후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적 회복 신청을 하고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경기도 파주에 합장해 드렸다”며 “국적을 다시 얻는 일이 효도는 아니겠지만 버림 받지 않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과 무용연구가 박외선(1015~2011)의 장남이다. 그는 1965년 군의관 시절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在京) 문인 82인 서명’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이듬해 수련의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와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조국을 떠난 외로움과 서러움, 조국과 모국어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즈음 쓴 시들엔 그리움이 절절하다. 낮잠에 깨어난 어머니가 시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만지며 “여보오, 참 오랜만이네요”하는 모습에 ‘어머니는 어디를 헤매며 사시는 것인지,/제발 그 길만은 평탄하고 아름답기를.’(‘어머니의 세상’)라며 목이 멘다. 시인은 이날 간담회에서 젖은 목소리로 “가슴이 아픈 시”라고 했다.

조국을 떠난 그가 정을 붙인 것은 이슬이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습관 덕에 매일 이슬을 만났다. 그는 1997년 시 ‘이슬의 눈’을 썼고 이번 시집에도 ‘이슬의 하루’ ‘이슬의 애인’ ‘이슬의 뿌리’를 수록했다. ‘이슬의 하루’에선 ‘이슬의 하루는/허덕이던 내 평생이다./이슬이 보일 때부터 시작해/이슬이 보일 때까지 살았다./’고 노래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인간적 유대관계가 많이 훼손돼 생명의 신성함, 찰나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이슬은 깨끗한 한 평생을 짧게 보내고 흔적 없이 사라져서 좋았습니다.”

미국적 색채가 드러나는 시어도 있다. 표제시 ‘마흔두 개의 초록’에서 시인은 초여름 열차를 타고가다 만난 눈부신 초록을 노래하며 ‘마흔두 개’라고 수식어를 달았다. 왜 마흔두 개인지, 출판사 편집자도 오래 갸우뚱 했다고 한다. 시인은 “흑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그 덕에 숫자 42는 단순히 많다기보다 자부심이 있는 좋은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 시인은 마해송 전집 완간 소식도 알렸다. 아버지는 1966년 그가 수련의 과정을 위해 미국에 간 지 넉 달 만에 뇌중풍으로 타계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인은 비행기표를 살 수 없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0년이 돼 가는데 아직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전집이 완간돼 ‘죄’가 조금은 씻어졌다”고 했다.

마해송 전집은 2013년 6월 ‘바위나리와 아기별’이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3권의 수필집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이 출간됐다. 2년 만의 완간이다.

마 시인은 “아버지의 저작권과 사용료, 인세 등을 모두 문학과지성사에 맡기고 마해송 문학상과 함께 잘 꾸려나가길 부탁했다”며 “한국말도 잘 모르는 제 아이가 인세를 받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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