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법조인 총리와 부패척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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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바뀌면서 총리도 김황식 총리에서 정홍원 총리로 바뀌었을 때다. 총리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판사 출신인 김 총리와 검사 출신인 정 총리의 스타일 차이가 큰 화제가 됐다.

김 총리에게 보고를 하면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눈을 감고 보고내용을 자세히 들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설명을 다 들은 뒤에야 “그건 이렇게 합시다”라고 결론을 내려줬다. 이렇다하게 타박하는 일도 없이 경청하는 김 총리는 모시기 편한 총리였다. 당사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판사가 최고의 판사이듯 김 총리는 ‘이 말도 맞고 그 말도 맞다’는 황희 정승 같은 총리였다.

그러나 정 총리가 취임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정 총리는 보고를 마치기도 전에 “이건 왜 이렇게 돼 있는 거냐” “무슨 근거로 이렇게 결정한 거냐”라며 면도날처럼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다. 마치 검사가 피의자 신문을 하듯이 꼼꼼하게 빈틈을 찾아내서 총리실 공무원들은 대면보고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른바 ‘법조인 총리’의 원조는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12월 기용된 대법관 출신 이회창 총리다. ‘대쪽 판사’로 명성을 떨치던 이 총리가 깜짝 발탁될 때까지만 해도 총리는 군인 출신이거나 대학총장 같은 명망가가 대부분이었고, 법조인은 없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역시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총리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데다 법조인에게 각별한 신뢰를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법조인 총리는 대세를 이룬 듯하다.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했고, 김 전 소장이 낙마하자 정홍원 총리를 내세웠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정 총리가 사임했을 때는 ‘국민검사’ 안대희 전 대법관을 후임으로 발탁했으나 자진사퇴로 허사가 됐다. 여기에다 총리직을 고사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법조계 총리 후보들은 수두룩하다. 이번 총리 지명 때에도 박 대통령은 현직에 있는 한 고위 법조계 인사를 최적임자로 보고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법조인 총리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조차 썩 긍정적이진 않다. 지나간 잘잘못을 단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는 직업의 특성상 복잡한 국정을 이끌어가고 여야 정치권과 대화를 해나가야 하는 총리의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일련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박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지난해 부패척결의 상징적 존재인 안 전 대법관 카드가 무산됐지만 총리실에 지시해 부패척결추진단을 만들어놓았고, 이번에 총리 후보자를 물색할 때에도 ‘안대희 같은 인물을 찾고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 결국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도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메시지로 내놓았다.

황 후보자는 부패척결 전문가가 아니고 정치개혁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생각은 더욱 굳어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피아의 부패 사슬에다,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무능에 박 대통령은 적당한 화합보다는 확실한 척결 쪽에 마음을 둔 듯하다. 이미 검찰에는 청와대에서 온갖 비리 첩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문제는 이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회심작으로 꼽고 있던 경남기업 수사는 ‘성완종 게이트’로 불똥이 튀었고, 이마저도 민생고에 허덕이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피로감을 불러오고 있다. 더욱이 부패척결은 자기 썩은 살부터 베어내겠다는 각오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 정권에 과연 그런 결연함이 있는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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