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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학계 헤게모니 쥔 美 유학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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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학계 헤게모니 쥔 美 유학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상운 기자입력 2015-05-16 03:00수정 2015-05-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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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지음/318쪽·1만6000원·돌베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강의 모습. 영어에 서툰 한국 유학생들은 토론식 강의에 주눅부터 들기 일쑤다. 동아일보DB
최치원과 이승만, 박정희의 공통점은? 당시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강대국으로 유학을 갔다 와서 문화 혹은 정치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점이다. 신라시대 당나라에서 공부한 최치원과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학위 출신의 이승만은 각각 중국과 일본, 미국에 대한 학문적 종속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층이론에서 따온 용어이자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지배받는 지배자’ 역시 미국의 학문 시스템에 철저히 종속됐으나 한국 학계에서는 지배층으로 군림하는 미국 유학파들의 위상을 상징한다.

미국에서 사회학 석·박사를 딴 저자는 미국 유학파가 점령한 한국 학계가 미국의 학문 풍토와 달리 왜 후진적인 행태를 보이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학계의 한심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단순히 자료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10여 년에 걸쳐 80여 명의 유학생을 만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았다. 저자는 “한국 지식인들은 정치, 시민사회에 민주화와 근대화를 거세게 요구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가장 모순된 집단”이라고 일갈한다.

미국 유학파들의 끝은 창대하나 시작은 미약했다. 책에서는 이들이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미국의 토론식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례가 나온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훌륭한 성적으로 마친 엘리트들이 언어장벽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는 것이다. 일단 시작부터 기가 죽은 유학생들은 점차 미국 대학에 적응하면서 미국 시스템의 우월성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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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유학파들의 삶도 수월하지는 않다. 백인 중심의 인종질서와 더불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언어장벽으로 인해 주류 사회에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상당수 유학파들이 도중에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는 폐쇄적 학벌주의와 비민주적 소통, 후진적 대학 시스템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책에는 학회를 마친 뒤 회식자리에서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형, 동생”을 불러대며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 한 교수의 경험이 소개됐다. 심지어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분야별 전문가들을 모으기보다 학부 선후배를 중심으로 연구자들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교수 임용 과정에서도 미국 학위뿐만 아니라 국내 학부를 일일이 따진다. 저자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학부 학벌과 대학원 학벌이 이중으로 작동하고, 학부 학벌의 인맥과 맞물려 종종 학벌정치로 비화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유교적 가부장 질서와 연공서열에 눌려 자유로운 학문비판이 이뤄지지 못하는 행태도 젊은 학자들의 의욕을 꺾는다. 기존 통설을 공박하는 새로운 학문적 시도를 ‘예의 없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학계에 실망한 상당수 유학파들은 틈나는 대로 미국을 찾아가 연구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활로를 찾는다. 미국의 첨단 학문 트렌드를 좇고 이곳 연구자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이 국내에서 연구를 하는 것보다 생산성이 훨씬 좋다는 얘기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의 시스템에 기대는 학문적 종속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구를 이어가다 보니 창의성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 유학파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쳐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결국 집중력을 잃게 된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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