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을 노래처럼 부른다?…‘송서율창’ 명인 유창 선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8일 12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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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강의실에서 장단에 맞춰 글을 읽고 있는  유창 선생.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강의실에서 장단에 맞춰 글을 읽고 있는 유창 선생.

‘유인(有人)이 문래복(問來卜)하되 여하시화복(如何是禍福)일고/아휴인시화(我虧人是禍)요 인휴아시복(人虧我是福)이라.’ (어떤 것이 재앙이고 행복인가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남을 해롭게 함은 재앙이요, 남이 나를 해롭게 함은 행복이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 종로구 봉익동 종묘 옆 사단법인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강의실에 모인 30여 명의 남녀가 유창 선생의 장구 장단에 맞춰 옛 선비들처럼 일정한 운율과 고저장단에 맞춰 글을 읽어나간다. ‘대학’ ‘중용’ ‘격몽요결’ 등 고전과 고대 문장가들이 애독하던 산문을 교재로 쓰고 있다.

송서율창(誦書律唱), 낯선 말이다. 좋은 글과 시를 익히기 위해 운율을 넣어 노래처럼 부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왜 이런 방법을 쓰는 걸까.

좋은 문장은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소리가 뇌를 공명하고 다시 온몸으로 내려와 ‘명문(名文)이 곧 수신(修身)’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송서율창에 빠진 이들은 “송서율창은 고품격의 고전과 시를 통해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한자공부도 함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송서율창 보급을 통해 600년 선비의 숨결을 이어가고 있는 이가 경기민요 명창인 유창 선생(56)이다. 2009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그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성인반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청소년반을 운영하고 있다. 위기지학(爲己之學). 배워서 실생활에 적용하는 실용교육이 그의 목표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입니다. 한자를 모르고는 말의 정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문맹’일 것입니다. 2018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사회, 윤리 교과서에 한자와 한글을 병기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는 2012년 세종마을 선포 1주년 때 훈민정음 반포 재연행사에서 ‘훈민정음’을 송서로 불러 주목을 끌었다. 송서는 글을 읽는 낭독의 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고전이든 여러 가지 창법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주요 고전에 수록된 효행, 충신, 열녀, 효부, 위인 등에 관한 것, 시(현대시 포함), 고대 시가, 동요, 명문 등 문학적 수월성이 풍부한 작품을 골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 결실이 2013년에 출시한 ‘송서율창, 꽃을 피우다’라는 CD다. 거기에는 ‘명심보감’ ‘죽서루’ ‘천자문’ ‘중용’ 등이 수록돼 있다.

그는 올 4월 현재 67명의 이수자를 배출했다. 전수장학생도 2명이 있고, 100명이 넘는 전수자들이 송서율창을 전파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봉익동 종묘 옆 사단법인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유창 선생의 장구 장단에 맞춰 글을 읽고 있다.
서울 종로구 봉익동 종묘 옆 사단법인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유창 선생의 장구 장단에 맞춰 글을 읽고 있다.

::송서율창(誦書律唱)이란?::

송서율창은 한자와 그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글공부와 깊은 관계에 있다. 옛날 글공부는 주로 소리를 내어 글을 읽고 외웠기 때문이다.

송서의 연원은 고려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 과거시험은 각 과목을 초장·중장·종장으로 구분해 3차례에 걸쳐 치렀고, 조선시대에 들어 송서는 ‘강(講)’이란 교육방법으로 더욱 활성화됐다. 송서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때 배강(背講)이란 과목으로 채택됐다. 시험장에서 책을 앞에 놓고 뒤돌아 앉아 책 내용을 줄줄 외우는 것이다. 따라서 성균관·향교·서원·서당 등 당시 모든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시되던 교육방법이었다.

조선은 공부의 나라요, 글소리의 천국이었다. 위로는 임금과 세자에서부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글을 읽고 외웠으며 아래로는 입신출세를 마음에 둔 선비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 옛 선비들은 송서를 통해 책 한 권 분량도 거뜬히 외우면서 자연스레 그 내용까지 체득했던 것이다.

송서가 문장을 외우는 방법이었다면 율창은 시를 외우고 읊는 방법이었다.

송서율창은 이렇게 문장이나 시에 세련된 율격을 넣어 멋과 맛을 살리는 소리의 예술이다.

◇유창 선생 프로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
-(사)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이사장
-(사)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소리극 ‘장대장타령’(2000) ‘봉이김선달’ 등 20여 편에 주연 등으로 출연
-송서 ‘등왕각서’ ‘적벽부’ 등 발표회 다수
-전주대사습 민요부문 장원(1998) 전국 경서도창대회 대통령상(2000) KBS 국악대상 민요상 수상(2003)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2012)
-홈페이지: www.uchang.org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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