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업은 아이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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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신청한 신용카드를 받으러 은행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지갑을 뒤져도 신분증이 없었다. 다행히 창구 직원의 상냥한 기억력 덕분에 신용카드는 받았지만 늘 지갑에 넣고 다니던 운전면허증이 언제부터 없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무실에서는 혹시 집에 있을까 희망을 가졌는데 집에도 없었다. 둘 다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주민등록증을 따로 보관해두어서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길은 있으므로 일단 느긋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경험에 의하면, 무엇이 감쪽같이 없어졌을 때는 열을 내며 온갖 데를 다 뒤져봤자 성과는 없이 스트레스만 받기 일쑤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신혼 초의 일이다. 퇴근한 남편이 파자마가 없어졌다며 부산을 떨었다.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면서 나중엔 오기로 찾기 시작했다. 마치 형사가 증거물을 찾듯이 옷장 서랍을 차례차례 열고 10cm 간격으로 점검해 나갔다. 그렇게 밤 한 시가 넘도록 집 안을 수색했지만 아침에 벗어놓은 파자마는 나오지 않았다.

“그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할 수 없이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양복을 벗는데 아뿔싸, 바지 속에 파자마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 늦잠 자는 바람에 급하게 서두르다가 파자마 위에 바지를 입고 출근한 거였다.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더니 그 속담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닷새를 기다려도 소식이 없던 나의 신분증은 아주 간단하게 내게 돌아왔다.

“아, 신분증 드려야지…. 자꾸 잊어버리고 못 드렸네요.”

옆자리 직원이 자기 지갑에서 내 운전면허증을 꺼내는 게 아닌가. 그것이 왜 거기에 들어 있는지 몰라 멀뚱하니 쳐다보는 내게 “지난주에 우체국에서 수입인지 사오라고 하면서 신분증 주셨잖아요”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날 유난히 바쁜 일이 겹쳐 정신없긴 했지만 이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을 수 있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긴 했지만 서둘러 분실신고를 하지 않고 기다린 게 그나마 잘한 일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때로 세상일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발버둥을 쳐도 안 되던 일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실마리가 풀릴 때가 있다. 그러니 무진 애를 써도 안 될 때는 차라리 느긋해지는 게 낫다.

혹시 어떤 일이 내 뜻대로 안 된다 하여 오기로 눈을 부릅뜨고 있다면, 그 원인이 내 안에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업은 아이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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