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야구기록의 한계와 합리성 찾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30일 05시 45분


사진|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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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경기만 2000번 넘게 중계한 KNN 이성득 해설위원은 투수 심수창의 방어율(28일까지 2.55) 얘기가 나오자 목에 핏대를 세웁니다. 박복한 승운이야 팔자소관이라 치더라도, 방어율 운까지 없다는 겁니다. 야수들의 실책성 플레이가 속출한 탓에 실점했음에도, 이것이 모두 안타로 처리되며 방어율까지 손해를 봤다는 주장입니다. NC 김경문 감독은 최근 “불규칙 바운드는 전부 안타를 줘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습니다. 야구장 땅이 안 좋아 타구가 튀면 내·외야수가 얼핏 보기에 바보 같은 포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입니다. 통계분석전문가인 빌 제임스는 야구에서의 실책을 두고 ‘사이비 도덕’이라고 표현합니다. 기록원의 재량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에 따라 실책과 안타를 구분 짓는 비합리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요즘처럼 선수 몸값이 치솟은 환경에서 안타냐, 실책이냐의 기록 하나는 타자의 타율과 수비수의 수비율은 물론 투수의 방어율에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여러 선수의 몸값을 좌지우지할 요소가 됩니다. 특히 프리에이전트(FA)를 앞둔 타자는 굉장히 민감하다고 합니다. 경기 후 “안타인데 왜 실책을 줬느냐”는 이유로 기록실 문을 발로 찬 선수도 몇 있습니다.

#KBO 김태선 기록위원은 25년 경력의 베테랑입니다. 자칫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던 지난해 3월 시범경기 두산-롯데전에서 터진 부정위타자를 적발해낸 것도 그입니다. 이런 베테랑 기록위원도 현행 야구기록이 경기 내용을 완벽하게 담을 수 없음을 순순히 인정합니다. 다만 밖에서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것처럼 기록원이 무소불위의 입장에서 주관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야구장에서 기록실이 어디 위치하느냐에 따라 타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단, 애매하더라도 판단은 빨리 내려야 합니다. “신중하게 본다고 시간을 끌며 오히려 선수에 대한 호불호가 들어가 객관적 판단을 못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똑같은 타구에 내야수가 공을 더듬으면 발이 빠른 타자는 안타고, 발이 느린 타자는 실책일까요? 김 기록위원은 “실책성 플레이가 난 순간에 타자가 1루에 얼마나 근접했느냐를 보고 판단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라 열심히 뛴 선수가 내야안타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현대 기록 체계에서 실책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못 잡을 타구는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수는 팀에서 존경 받을 수 없겠죠. 실책이 많은 선수는 수비가 불안한 선수일 수 있지만, 그만큼 수비범위가 넓은 헌신적 선수라는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실책 숫자가 아니라, 이 선수가 성공한 수비 숫자부터 챙겨보는 것이 진짜 가치에 더 접근하는 자세일 수 있습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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