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도 통한 ‘파리바게뜨’…SPC그룹 하루 빵 1000만 개 생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9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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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역 주변의 한 빵집. 20㎡ 규모의 매장에는 빵 굽는 향기가 가득하다. 계산대 앞에는 파리지앵들이 바게트와 크루아상, 타르트, 깜빠뉴 등을 담은 쟁반을 들고 줄을 서 있다.

이 곳은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가 지난해 7월 문을 연 점포다. 개점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이 만든 빵이 입맛이 까다로운 프랑스인들에게 통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매장의 현재 월 매출액은 국내 파리바게뜨 매장의 3배에 이른다. ‘프랑스빵의 아이콘’인 바게트도 하루에 700~800개씩 팔려 나간다.

SPC그룹은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이 1945년 황해도 옹진에서 문을 연 ‘상미당’ 빵집을 모태로 한다. SPC는 현재 ‘빵의 본고장’인 파리에까지 진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해방둥이 빵집’으로는 상미당 외에도 뉴욕제과와 고려당, 태극당이 있다. 이 중 상미당만이 대기업으로 자라났다. 전문가들은 SPC그룹이 명실상부한 ‘고희(古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제빵업이라는 본업(本業)에 충실하면서도 트렌드를 빨리 파악해 시대에 맞게 혁신한 점을 꼽는다. SPC는 국내에선 프랜차이즈(가맹사업)를 통한 규모화를, 해외에선 상품경쟁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화를 꾀해 성장을 이어나갔다.

● 식품기업이 된 해방둥이 빵집

황해도 옹진의 대표 빵집으로 통했던 상미당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1948년 서울 방산시장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업주인 허창성 명예회장은 1959년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현 삼립식품)를 세워 빵집을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삼립은 1960년대에 국내 최초로 식빵을 대량 생산하고 ‘추억의 빵’의 대명사로 통하는 크림빵을 내놓았으며, 1970년대에는 겨울철 국민 간식인 ‘삼립호빵’을 선보였다. 당시 삼립식품 공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1972년 삼립식품은 고급 케이크를 생산하기 위해 ‘한국인터내쇼날(샤니)’을 세웠고, 1983년 자회사로 독립시켰다. 이때 허영인 현 SPC그룹 회장이 샤니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신사업 개척에 나서게 됐다.

SPC그룹은 이를 ‘제2의 창업’의 시작로 보고 있다. 허 회장이 88올림픽 등으로 외식산업이 호황을 이룰 것을 예상하고 가맹 사업에 눈을 돌리는 등 그룹의 체질을 바꿔나갔기 때문이다.

● 가맹사업으로 덩치 키워

가맹 사업의 시작은 아이스크림 사업이었다. 허 회장은 1985년 미국에서 ‘배스킨라빈스’ 브랜드를 들여왔다. 동시에 제빵업도 강화했다. 허 회장은 1986년 ‘프랑스 정통 고급빵’을 팔기 위해 서울 반포에 ‘파리크라상’을 열어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88년 파리크라상보다 대중적인 가맹점 형태의 ‘파리바게뜨’를 론칭했다.

파리바게뜨는 고려당이나 크라운베이커리 등에 비해 후발주자였지만, ‘매장에서 갓 구운 빵을 판다’는 고급화 전략을 구사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다른 빵집들은 공장에서 빵을 만들어와 매장에 진열해 팔았지만, 파리바게뜨는 가맹점에 냉동반죽을 공급해 직접 굽게 했다. 이를 통해 개인 빵집보다 낮은 비용에, 경쟁사 빵집 프랜차이즈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빵을 팔 수 있었다.

다른 기업들에게 위기였던 외환위기는 SPC그룹에는 기회가 됐다. 명예퇴직자들이 대거 빵집 창업에 나서면서 1997년 파리바게뜨는 국내 1위 제빵기업으로 올라서게 됐다. 이후 파리바게뜨는 매장을 카페처럼 만드는 ‘카페형 매장’을 선보이고, 종이컵이나 제품 포장에까지 디자인적인 요소를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 해외에도 한국식 빵 문화

SPC그룹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았다. 국내 시장이 포화되자 2004년 중국 상하이(上海)를 시작으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에서도 매장에서 구운 빵을 파는 전략을 펼쳐 중국 미국 프랑스 등지에 해외 매장이 174곳에 이른다.

현재 SPC그룹이 하루에 생산하는 빵은 1000만 개로 이를 연간 생산량으로 환산하면 지구를 10바퀴 돌 수 있는 수준이다. SPC그룹은 해외 사업을 더욱 확장해 현재 4조2000억 원(2014년 기준)인 매출액을 2020년 10조 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대학장은 “SPC그룹은 서양에서 들어온 빵에 한국의 식문화를 더해 한국 고유의 빵 문화를 만들어냈지만,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현재 직영(直營)으로 운영하는 해외 점포의 가맹점 형태 전환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사업 이외의 신성장동력을 추가로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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