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취재 노트/부형권]감정 앞선 한국언론 ‘아베 뒷문입장’ 오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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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강연장 출입문 3개… VIP-방청객-취재전용 나눠
‘옹졸한 아베’는 팩트와 달라

부형권 특파원
부형권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하버드대 학생 시위대를 피해 ‘뒷문’으로 강연장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열린 아베 총리의 강연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87)의 항의를 전하면서 국내 몇몇 언론이 이같이 보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지 않고, 공개 사죄와 반성도 하지 않는 아베 총리의 ‘옹졸하고 궁색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보도인 것 같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도 “강연장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는 ‘쪽문’ 같은 게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기에는 ‘아베 총리의 뒷문 입장’은 오보, 또는 적어도 ‘한국 독자의 오해를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보도’다. 기자는 전날인 26일 오후 강연장을 사전 답사했다. 3개 출입문을 운영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교정 안에서 강연장으로 들어가는 ‘큰 문’은 아베 총리와 귀빈(VIP)들이 이용하고, 길거리(JFK 스트리트) 쪽의 문 하나는 방청객 입장용, 또 다른 문은 취재진 출입구였다. 평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큰 문 출입구엔 경비실도 있었다. 그 안의 보안요원은 기자에게 “내일(27일)은 취재진도 이 문으론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유의하기 바란다”고 안내해줬다.

27일 오전 9시경 ‘아베가 강연장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JFK 스트리트 쪽 문 앞에서 1시간 넘게 침묵시위를 하던 할머니가 “아베는 왜 뒷문으로 들어가냐”고 외친 건 ‘사실(팩트)’이다. 아베 총리가 방청객들과 다른 문을 이용한 것도 맞다. 그러나 이를 결합해 ‘아베 총리가 숨어서 강연장으로 들어갔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아베 총리는 미국 정부와 학교 측이 정해준 출입구로 들어간 것뿐이다. 그 때문에 할머니와 하버드대 학생들이 미국 시민을 상대로 자유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었다. 아베 총리에게 질문을 던진 재미동포 2세 조지프 최 씨(20·하버드대 경제학과 2학년)도 JFK 스트리트 시위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플로어(객석)의 질문에 어떤 제한이나 제약이 없었다”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외교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민 심정에선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아베 총리가 한없이 밉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비난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보편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베 뒷문 입장’ 보도는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보스턴=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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