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베이스볼] 지저분한 ‘내추럴 직구’, 선발 이상화가 꾸는 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28일 05시 45분


롯데 이상화가 팔꿈치 부상과 부진의 암흑을 건너 선발투수로 연착륙하고 있다. 선발자원이 부족했던 롯데의 4선발을 맡아 시즌 초반 2승1패, 방어율 2.74의 빼어난 성적으로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사진은 15일 사직 NC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모습. 사직|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롯데 이상화가 팔꿈치 부상과 부진의 암흑을 건너 선발투수로 연착륙하고 있다. 선발자원이 부족했던 롯데의 4선발을 맡아 시즌 초반 2승1패, 방어율 2.74의 빼어난 성적으로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사진은 15일 사직 NC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모습. 사직|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롯데 4선발로 사는 법

‘고교 스승’ 이종운 감독이 준 선발 기회
하체중심 활용 후 포크볼 등 공끝 살아나
레일리에게 배운 투심도 실전에서 위력
현재 2승·방어율 2.74…4선발 고민해결
풀타임 선발·이닝이터·팀 우승 3가지 꿈

2006년은 또 한번의 ‘황금세대’로 불린 특급 고교유망주들이 전국대회에서 격돌한 해다. 안산공고 김광현, 서울고 임태훈, 장충고 이용찬 이두환, 진흥고 정영일, 동성고 양현종, 북일고 장시환(개명 전 장효훈)이 모두 3학년으로 모교를 대표했다. 그러나 청룡기 우승컵의 주인공은 경남고였다. 투수 이상화와 이재곤 원투펀치는 타 팀 에이스를 함께 격파했다. 특히 청룡기 결승에서 이상화는 13.1이닝 1실점이라는 무시무시한 투구로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경남고를 고교 최강으로 이끈 사령탑은 이종운 현 롯데 감독이다. 롯데는 그해 이상화와 이재곤을 함께 1차지명하며 미래를 기대했다. 그 후 8년. 이 감독과 이상화는 롯데에서 다시 만났다. 큰 기대를 걸었던 제자는 부상과 수술, 재활로 긴 터널을 지났다. 그동안 기록한 개인통산 성적은 단 3승6패. 그러나 올해 롯데의 4선발을 맡아 2승1패, 방어율 2.74를 기록하며 시즌 초 롯데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상화를 만나 그간의 노력과 꿈 등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 다시 만난 고교 시절 스승 이종운 감독

우리나라는 사회곳곳이 학연과 지연에 얽매여 있어 정서상 이를 극도로 경계한다. 프로야구는 출신 고교와 대학의 폭이 다른 직종보다 훨씬 좁다. 이종운 감독과 이상화는 학연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경남고 선후배일 뿐 아니라 감독과 선수(에이스 투수)로 고교 전국대회(청룡기) 우승을 함께 했다. 이 감독이 스프링캠프 출발 전 “이상화를 4∼5선발 후보 중 한명이다”고 말하자 곧장 일부 팬들은 ‘라인 탔냐?’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모처럼 잡은 소중한 기회였을 텐데 억울한 부분, 그리고 큰 중압감도 있었을 것 같다.

“롯데에는 부산 출신 선수가 많다. 당연히 경남고 출신도 여럿이다. 그 중 고교 때 감독님께 야구를 배운 선수도 꽤 된다. 스승과 제자이니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걸 라인이라고 부르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로다. 기회가 왔을 때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얼마 버틸 수 없다. 아무리 후배라고, 제자라고 기회를 줘도 잡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그 후에는 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을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교 은사를 프로에서 감독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사실 매우 특별한 인연이자 상황이다. 솔직히 야구나 다른 스포츠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다시 얼굴도 떠올리기 싫은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꽤 있다.

“하하하. 사실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항상 감독님에 대한 좋은 기억과 느낌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고교 때도 그렇고 지금도 특별히 말씀을 많이 하시지 않는다. 프로에서는 더 그러신다. 롯데 코치로 오신 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저 한 팀에 감독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로만 큰 의지가 됐었다.”

-감독을 맡기 전 프로에서는 파트가 전혀 달랐는데

“감독님이 지난해 3군에 계시다가 1군으로 올라오셨고, 1루코치를 맡으셨다. 훈련 때는 외야수비를 많이 담당하셨다.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외야에서 체력훈련할 때 종종 마주치면 한두 마디씩 해주곤 하셨다.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 속도보다 중요한 건 공의 움직임

-이제 그 기회의 증명에 대해 말할 차례인 것 같다. 지난해와 투구 폼부터 달라졌다.

“상체의 힘만으로 공을 던졌던 것 같다. 팔꿈치 수술도 그 영향이 아니었을까 후회한다. ‘하체를 써라, 상체의 힘을 빼고 던져라’는 말을 수백수천 번은 들었다. 그래도 잘 안됐다. 스프링캠프에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체 움직임, 중심 이동에 고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느낌이 왔던 것 같다. 왼발을 타자와 더 가깝게 끌고 나와 던질 수 있도록 훈련을 반복한 결과였다. 그러자 확실히 공끝이 좋아졌고 팔과 어깨에 오는 충격도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매끄러운 투구로 이어지면서 팔각도가 높아지고 머리 흔들림도 줄어드는 효과도 보너스 같았다.”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데는 날카로운 공끝, 그리고 포크볼이 결정적이다.

“조정훈 선배에게 배우고, 정찬헌 선수 그립도 파고들었다. 이동현 선배가 던지는 영상도 수없이 돌려봤다. 팔각도와 중심 이동이 좋아지면서 포크볼의 떨어지는 각도가 달라졌다. 새로운 무기가 완성됐을 때 그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올해는 포크볼뿐 아니라 투심패스트볼도 던지고 있다. 투심은 포크볼과는 또 전혀 다른 계기가 있었다.”

-다르다면,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심리적인 이유가 있었나?

“그게 참 신기하다. 브룩스 레일리가 투심을 참 잘 던진다. 곁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던져 봤는데 포심패스트볼과 궤적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레일리가 ‘타자 입장은 궁금하지 않냐? 투수는 큰 변화가 없다고 느끼는데 타자는 그래서 더 어려운 공도 있다. 분명 네 투심은 타자에게 까다로운 공이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자신감을 갖고 실전에서 던졌다. 포수부터 마지막에 날카롭게 휘는 좋은 공이라고 하더라. 타자들 반응도 만족스러웠다.”

-공이 지저분하다고 해야 할까. 구속이 시속 140km 초반으로 결코 강속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심패스트볼도 마지막까지 살아 들어오는 느낌이다.

“투수는 타자를 상대해 아웃으로 잡는 게 임무다. 빠른 공이 없다면 치기 어려운 공을 던지면 된다고 믿는다. 내추럴 직구라고 부르던데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흔들리는, 변화하는 그런 직구를 던지고 싶다. ‘공이 지저분해졌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기분 좋다. 이 점을 더 잘 살리고 싶다. 강속구가 없기 때문에 변화구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싶다. 속도보다 더 까다로운 움직임이라는 큰 무기를 가진 투수가 되고 싶다.”

● 고3 때처럼 우승하는 게 가장 간절한 꿈

-2009년 입단했지만 그동안 부상, 수술, 재활, 군입대 등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는 프로선수가 되고 싶어 잠자는 것도 잊고 훈련했다. 야구가 참 쉽다고 자만했던 순간이었다. (팔꿈치)수술할 때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굉장히 컸다. 그러나 재활을 끝내고 다시 공을 던질 때 야구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스피드도 나오지 않고 컨트롤도 잡히지 않고, ‘이래서 프로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이겨내는 방법은 운동밖에 없었다. 지금 투구폼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 것도 그 훈련 덕분인 것 같다.”

-7년 동안 미룬 것이 참 많을 것 같다. 앞으로 마운드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

“풀타임 선발, 그것도 이닝을 많이 던지는 선발투수가 되고 싶다. 5일씩 쉬고 나오는 만큼 많이, 더 오래 던져야 한다. 승수나 그런 것보다는 팀에 보탬이 가장 많이 되는 투수가 되고 싶다. 물론 고3 때처럼 우승하는 것은 가장 간절한 꿈이다.”

● 이상화는?

▲생년월일=1988년 3월 1일 ▲키·몸무게=188cm·95kg(우투우타) ▲출신교=양정초∼경남중∼경남고 ▲프로 입단=2007년 롯데 입단(1차지명) ▲통산 성적(2007∼2014년)=26경기 3승6패1홀드, 방어율 6.38(72이닝 51자책점) ▲2015년 성적(27일 현재)=4경기 2승1패, 방어율 2.74(23이닝 7자책점) ▲2015년 연봉=3700만원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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