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행복하지 않은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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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김정훈 사회부장
수년 전 일이지만 스위스 국제방송은 자국 국민을 상대로 ‘스위스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40% 정도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에 달하는 고소득 국가인 데다 아름다운 산과 맑은 호수들로 경관이 수려한 이곳에서, 주민들은 막상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다니…. 이유가 뭘까. 설문조사는 당연히 그 이유도 물어봤다. 첫 번째는 땅덩어리가 좁다, 두 번째는 바다가 없다, 세 번째는 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이유가 되는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할 만한 얘기들이다.

이민을 간다면 어느 나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선 호주가 1등으로 꼽혔다. 땅이 넓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나라이며 늘 따뜻한 나라이니 스위스 사람들의 배부른 고민들이 일거에 해결되는 최적지일 것이다.

최근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스위스는 158개국 중 ‘2012∼2014년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에 올랐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한국은 47위였다. 중동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선 싱가포르(24위), 태국(34위), 대만(38위), 일본(46위)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10점 만점 척도인 행복지수는 사회보장 정도(30%)와 1인당 국민소득(26%)이 가장 큰 비중으로 반영된다. 다음으로는 건강기대수명(19%), 선택의 자유(13%), 관용 의식(7%), 부패 인식 정도(4%) 등이 계량화돼 합산된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과 건강기대수명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를 뛰어넘는 평균수명(81세)은 현 수준의 행복지수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사회보장 정도와 부패인식 정도는 2013년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30∼40위권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총점에 반영되는 비율은 불과 4%에 그치지만 부패인식 정도의 성적표는 중하위권 수준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이면에 공무원과 업자의 결탁 같은 ‘부패’ 문제가 놓여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전 정권과 야당 쪽을 겨냥한 사정 수사 또는 기업과 공무원 사회를 겨냥한 기강 잡기라는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집권 2기 이완구 내각이 ‘부패와의 전쟁’을 내걸고 나선 것은 이런 전체 맥락에서 볼 때는 크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세월호 참사의 악몽을 벗어나는가 싶었더니,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메모 리스트’가 불거지면서 ‘부패 충격’은 다시 우리 사회를 밑바닥까지 빠뜨리고 있다. 총리실에서는 이 전 총리가 거룩하게 등장하는 부패척결 캠페인 동영상 광고를 만들어 놨다가 이를 폐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검찰은 연초 정기인사 때 물먹였던 호남 출신 검사장을 발탁해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는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정치권의 부패 사슬이 그 일단이나마 드러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청와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 썩은 살은 놔두고 남의 뼈만 발라내자는 식의 정치적 득실에 따른 왜곡된 프레임만 들이대서는 해법이 없다. 돈을 뿌렸다는 분이 망자가 돼 있으니 검찰도 결코 쉬운 수사는 아니지만 옆으로 돌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사건이다. 맑은 마음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넘어서야만 하는 사건이다. 그 길만이 한국 국민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길이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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