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이젠 강정호 부럽지 않은 ‘거포’ 황재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27일 05시 45분


롯데 황재균. 스포츠동아DB
롯데 황재균. 스포츠동아DB
■ 필생의 라이벌 그리고 새로운 도전

고고때부터 프로 입단까지 라이벌
강정호의 성공을 바라만 본 황재균
수년간 근력 강화, 홈런타자로 변신
올 시즌 벌써 7홈런 ‘44홈런 페이스’

같은 팀에서 입단동기로 만난 데다 포지션도 같다. 더욱이 동갑내기이고, 한쪽은 고교시절 훨씬 더 주목을 받았던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최악의 악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한 현대는 2003년 큰 고민에 빠진다. 모기업이 그룹 분할 이후 경영이 악화돼 FA(프리에이전트)를 앞둔 거포 심정수, 수비의 핵 박진만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결국 2004년 심정수와 박진만은 함께 라이벌 삼성으로 옮겼다.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현대는 심정수의 자리는 용병 거포로, 박진만의 공백은 신인 육성으로 상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3년이나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신인(1차지명권 상실로 2차지명 1라운드)을 유격수로 낙점했다. 2003년 지석훈, 2004년 차화준, 2006년 강정호까지 모두 청소년대표 출신 유격수를 지명했다. 유망주 유격수 수집에 대한 집착은 2006년 신인 2차지명 3라운드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주인공이 지금 롯데 주전 3루수 황재균이다.

강정호.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강정호.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 필생의 라이벌에서 든든한 동반자로!

강정호는 광주일고 시절 투수 나승현과 함께 전국구 고교 스타였다. 유격수, 포수, 투수 중 어떤 포지션을 맡겨도 다 잘했다. 고교시절 팀(경기고) 전력이 약했던 황재균은 청소년대표도 하지 못했다. 훗날 그는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지석훈, 차화준 형, 그리고 강정호와 함께 수비 연습을 했다.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강정호는 2년간의 노력 끝에 2008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황재균은 2007년 주목 받았지만 2008년 백업으로 밀려났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서 밀려나자 충격이 컸다. 빨리 군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2009년 다시 팀에 돌아온 김시진 감독은 정성훈이 FA로 떠나자 유격수 강정호, 황재균 3루수라는 황금분할을 선택했다. 3루수 황재균은 2009년 타율 0.284, 18홈런, 30도루를 기록하며 넥센의 스타가 됐다. 그러나 세상은 유격수로 23홈런을 때린 강정호를 더 주목했다.

● 언제나 한 발 앞선 강정호, 그리고 홈런

넥센은 2009시즌 후 황재균을 롯데로 트레이드했다. 강정호는 이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거듭난다. 반면 황재균은 롯데가 기대했던 만큼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트레이드 상대로 넥센 유니폼을 입은 김민성이 오히려 더 펄펄 날았다. 절치부심의 시간이었다. 황재균은 겨우내 꾸준히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힘을 키웠고, 지난해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0.321)을 기록했다. 아시안게임대표팀에 선발돼 강정호와 함께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강정호가 유격수로 40홈런을 날린 뒤 KBO리그 출신 야수 1호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올해, 황재균도 조용히 새로운 도전을 완성하고 있다. 최근 몇 해 치열했던 근력 강화 운동의 결실이다. 우선 과거보다 길고 무거운 배트로 바꿨다. 강해진 근력에 자신이 없다면 시도할 수 없는 선택. 황재균은 “배트 무게를 10∼20g 늘려서 880, 890g을 쓴다. 인치도 길어졌다. 걱정도 있었지만 잘 적응해 잘 맞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결과는 23경기에서 타율 0.333에 7홈런, 장타율 0.656.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산술적으로 44홈런도 가능한 페이스다.

사직|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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