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치, 끝없는 ‘부정의 노력’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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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로베르토 웅거 지음·김정오 옮김/744쪽·4만 원·창비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 이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초반은 인간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정치사회 사상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정치’의 저자 로베르토 웅거는 이 사상이 지금까지 현실에서 온전하게 구현되지 못했다고 본다. 창비 제공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 이 그림이 그려진 19세기 초반은 인간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정치사회 사상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정치’의 저자 로베르토 웅거는 이 사상이 지금까지 현실에서 온전하게 구현되지 못했다고 본다. 창비 제공
1990년대 초 케임브리지 대학원생 시절 나는 로베르토 웅거 하버드 로스쿨 교수의 ‘정치’ 3부작(1987년)을 처음 알게 되었다. 통계에만 의존하는 경제학을 비판하고 사회이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1부 ‘사회이론’을 읽으며 그의 주장에 매료되었다. 드디어 세월이 흘러 ‘정치’가 한국 독자에게 다가왔다. 웅거의 출발점은 사회를 자연적 질서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상상하는 것, 즉 ‘인공물’로 보는 관점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사회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가 어느 정치사상에서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로베르토 웅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로베르토 웅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웅거는 자신의 이론을 ‘초자유주의(superliberal)’라고 정의한다. 그는 자유주의가 신봉하는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화적 역사’를 재구성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구조결정론을 넘어서려고 시도했다. 그는 마르크스 이전의 사상인 피에르 프루동의 ‘프티부르주아 급진주의’를 복원한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선 대안으로 ‘소규모 상품생산’과 경제적 분권화를 제시한다. 실질적 민주화를 위해 국가의 자본기금, 다양한 투자기금, 노사협력의 투자기금 등 3층의 소유구조를 제안한다. 그의 ‘분할된 소유권’은 더 많은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강화된 민주주의’를 위한 프로젝트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웅거의 노력은 이론의 연장이다. 그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부정의 능력’(존 키츠의 시에서 따온 문구)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부정의 능력에 따라 ‘슈퍼이론(super-theory)’과 ‘울트라이론(ultra-theory)’이 만들어진다. 슈퍼이론은 ‘끊임없는 부정의 노동’을 수행하지만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미셸 푸코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울트라이론은 체계적인 대안과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는 “모든 것이 정치”라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사회는 ‘미리 설정된 각본’이나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를 통해 다시 상상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운명을 거스른다!

1970년대 웅거는 29세의 나이로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가 되었고, 보수적인 법학계에 맞선 ‘비판법 운동’의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1980년대를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비판적이었으며, 로티의 표현대로 ‘항상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학자였다. 이러한 지적 작업은 그를 현실정치로 이끌었다. 스스로 브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웅거는 군사정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2007년에 룰라 정부의 전략문제 장관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브라질 주정부의 사회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 학문과 정치의 경계는 없다.

만약 웅거가 한국에 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웅거는 서문에서 한국에 대해 “놀랄 만한 발전의 성공 사례”라고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경제적 장치와 기회를 급진적으로 분산”하고 “국가와 기업의 상호관계를 대체”하고 “혁신자들의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한국에 “지적 식민주의라는 멍에”를 벗어버리라고 촉구하면서 “한국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정중하게 말한다. 미국만 바라보는 한국에 웅거의 ‘민주적 실험주의’가 새로운 영감을 주기를 기대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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