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역대 정개특위 명과 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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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국회 오세훈법 만들어 돈 선거에 ‘메스’
19대 국회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염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개혁하는 길이 정치 개혁의 출발점이다.”

역대 국회마다 정치 혁신을 내걸고 구성됐던 국회 정개특위의 그동안 활동 결과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탄식을 내뱉으며 짤막하게 답한 내용이다. 늘 정개특위에서 야심 차게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지만 매번 선거구 획정 문제와 같은 ‘밥그릇’ 싸움에 매몰돼 큰 틀의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논의만 무성했지 막상 결과물은 초라했던 ‘용두사미’ 정개특위가 19대 국회에서 더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엔 개혁적 법안 통과도

정치인들 사이에선 그나마 16대 국회 정개특위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가장 개혁적인 활동을 펼쳤다고 평가한다. 17대 총선을 코앞에 뒀던 2004년 3월 당시 국회는 정경유착의 폐단을 끊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을 전면 금지하고 ‘고비용 정치’의 원인으로 꼽혔던 지구당 제도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의 연간 후원금 한도를 1억5000만 원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처리했다.

16대 국회 때 초선 의원이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개특위 간사를 맡아 개정안 마련을 주도했던 터라 정치권에선 당시 통과됐던 정치 관련법을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각에선 한나라당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정치 혁신에 대한 여론이 거셌던 때라 가능했던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밖에도 16대 국회 정개특위는 지역구 후보와 별도로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1인 2표제를 처음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도 합의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다만 당시 정개특위가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손을 댔음에도 불구하고 16대 국회는 국회의원 정수를 273명에서 299명으로 26명이나 증원시켜 “의원 밥그릇을 늘리기 위해 야합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6대 총선 룰을 결정했던 15대 국회 정개특위도 비례대표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에 할당하는 정당법 개정안 합의를 이끌어냈다. 2000년 당시 지역구 26석을 감축해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이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그나마 정개특위를 통한 정치 제도 개선이 상당수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다.

말만 무성했다가 빈손으로 끝났던 역대 정개특위

국회 스스로 도입했던 개혁안을 다시 없애려는 상황도 종종 벌어졌다. 대표적 사례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가 꼽힌다. 2006년 당시 17대 국회는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수준을 높인다는 명분 등을 내세워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전격 도입했지만 지금까지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19대 국회 전반기에 구성됐던 정개특위는 결국 여야 간 공방만 벌이다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를 결론짓지 못했다. 그 대신 지난해 지방선거부터 교육감 선거에 교호 순번제를 도입하는 데 그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늘리는 데 합의한 18대 국회 정개특위 역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와 지역구 결합 비례대표제 방식이었던 석패율 제도 등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입씨름만 벌이다 빈손으로 끝났다. 2012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여야 당 대표 경선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겠다고 큰소리치기도 했지만 공염불이었다.

이 때문에 19대 후반기 정개특위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매번 정개특위마다 단골 메뉴로 거론됐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과 선거구획정위 독립, 획정위에서 마련한 선거구 조정안 수정 금지 등이 이번 정개특위에서도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공직선거법상 인구 편차 기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선거구 조정이 대폭 이뤄져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정치 개혁 현안이 제대로 정개특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석패율 제도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차치하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만이라도 합의하면 그나마 최근 10년 사이 가장 큰 정치 혁신을 이뤄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정개특위#국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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