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손성원]한국 경제 장기침체의 원인과 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과거같은 정부 재정지원 줄고 노동력 증가율-투자 수익률 하락
中-선진국 사이 샌드위치 신세
리먼사태 이후 성장률 3%대…향후 몇년간 더 하락할 위험
이민-여성 노동력 활용 늘리고 불확실성과 규제 과감히 혁파
잠재성장률 높이기 총력 펼쳐야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단기적인 성장 둔화는 글로벌 경제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가 우리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또한 단기적 성장 둔화와 장기적 경기 침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장기 침체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경제는 해마다 7%가량 성장했다. 1990년대에는 연간 성장률이 5% 안팎으로 떨어졌다. 리먼 사태 이후에는 성장률이 3%대까지 둔화했다. 향후 몇 년간 성장률이 더 하락할 위험도 있다.

과거의 견고한 성장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이고 최근 성장률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한국 경제는 정부 재정이 뒷받침돼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잠재성장률’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호황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4대강 정비사업처럼 재정이 투입된 대규모 토목 건설사업도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부동산과 건설 분야의 정부 개입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한없이 국채를 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부 부채는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역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측정하는 데 두 가지 핵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바로 노동력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다.

한국의 노동인구 증가 속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보통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출산율 저하 추세는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력의 증가 속도도 둔화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노동인구의 생산성이다. 더 많은 자본이 경제에 투입되면 잠재성장률이 증가하고 노동인구의 생산성도 더 높아진다. 과거 한국은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노동력과 자본을 쏟아부어 결실을 상대적으로 쉽게 거둘 수 있는 산업에 자본을 투입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렸다.

지금은 그렇게 쉽게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산업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은 가격 측면에서는 중국과, 기술면에서는 선진국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다.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생산성 수준을 볼 수 있는 좋은 척도 중 하나가 장기 채권 수익률이다. 이는 잠재적 자본 투자에서 예상되는 수익, 다시 말해서 한 나라의 생산성을 반영한다. 선진국들의 채권 수익률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수익이 대단히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규 투자의 생산성이 낮은 만큼 경제성장률도 계속 하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낮은 노동인구 증가율과 낮은 투자 수익률로 인해 한국의 잠재성장률 역시 낮아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인구 증가율을 높이기 위해 이민과 여성 노동력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는 불확실성과 규제를 걷어내 민간 기업들의 투자 수익률을 높여줘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투자도 중요하다. 인프라 재정비, 공공 주택 건설, 공공보건 시설 개선 등 좋은 투자 기회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4000억 파운드 넘게 들어가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국가 인프라스트럭처 계획’을 발표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경제성장을 부추길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투자의 문제 중 하나는 비(非)시장적인 고려가 의사결정 과정에 끼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장기적인 성장률 하락세를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나라마다 잠재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장기 침체#정부 재정#부동산#건설#정부 부채#노동력#생산성#국가 인프라스트럭처 계획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