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조각가 신성우를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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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4월 23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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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 그 한쪽에서 신성우가 자신의 작품 ‘모반’을 설치하고 있었다. 징이 박힌 라이더 재킷을 입은 모습은 무대에서 막 내려온 로커이지만, 섬세하게 작품을 다루는 손길만큼은 영락없는 예술가다. 전시회 오픈 3시간 전, 가수 아닌 조각가 신성우를 만났다.

인사동과 ‘로커’ 신성우(47)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 이 같은 편견과 달리 그에게 인사동은 익숙한 공간인 모양이다. 거리를 걸으며 좌판 상인들의 인사(“형님, 안녕하세요!”)를 익숙하게 받아내고, 전통찻집에서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나는 쌍화차!”라고 주문한다. “사진을 함께 찍자”며 팬들이 몰려와 인터뷰가 중단됐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 이쪽으로 오면 연예인도 뭐도 아닌, 철저히 이쪽 사람이에요.”

신성우가 말하는 ‘이쪽’이란, 미술계다. 중앙대학교 조소과 출신인 그는 가수, 배우, 예능인으로 활동해오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가 최근 서울 인사동 거리를 누빈 이유는 3월 11일부터 17일까지 코사갤러리에서 열린 ‘2015 봄나들이 한일 교류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장형택, 조현수, 임영선, 주랑 등 한국 작가뿐 아니라 후쿠시마 토시오, 쿠보타 키미코, 오노 마사요 등 일본 작가들이 참여한 단체전이다. 그가 일본 작가들과 교류를 시작한 건 지난 2006년 한일 교류전에 참가하면서다.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그의 설치 작품이 꽤 높은 가격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전시회는 계속해왔어요. 지난해 교토에서 개인전을 열어 작품 7개 정도를 선보였죠. 원래는 지금쯤 한국에서 개인전으로 했어야 하는데…. 나를 보여줄 작품들이 그만큼 새로 채워져야 가능하거든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성우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 ‘모반(母盤)’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어머니의 태반’이라는 뜻이다. 제목처럼 발아된 씨앗의 껍질 같은 모양이 태반을 형상하고 있다.

“파라핀을 오랜 시간 위에서 녹여 흐르게 한 뒤, 그것을 주물로 뜬 거예요. 그걸 뒤집으면 이런 모양이 되죠. 발아된 씨앗의 껍질에는 태반, 즉 어머니의 느낌이 있어요. 연꽃 모양 같기도 하죠. 연꽃은 고여 있는 물을 정화시키잖아요. 부모를 떠올린다는 것만으로도 귀소(歸巢)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마음을 태반에 담았어요.”
1 2007년 일본 히로시마의 부동원 사찰에서 열린 한일 미술 교류전에 출품한 작품,‘SHE’. 2 2006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설치 작품, ‘원(源)’ 3 4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주물 작품, ‘유추(類推)’ 시리즈. 5 3월 중순 열린 ‘2015 봄나들이 한일 교류전’에서 발표한 최근작 ‘모반(母盤)’. 발아된 씨앗의 껍질과 같은 모양으로 어머니의 태반을 형상화했다.
1 2007년 일본 히로시마의 부동원 사찰에서 열린 한일 미술 교류전에 출품한 작품,‘SHE’. 2 2006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설치 작품, ‘원(源)’ 3 4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주물 작품, ‘유추(類推)’ 시리즈. 5 3월 중순 열린 ‘2015 봄나들이 한일 교류전’에서 발표한 최근작 ‘모반(母盤)’. 발아된 씨앗의 껍질과 같은 모양으로 어머니의 태반을 형상화했다.

조각,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선배 작업실에 들러 작품을 만들어왔다. 학창 시절 동고동락하며 예술을 논하던 선후배들은 대부분 교수가 됐다. 조각가로서의 그의 삶은 어린 시절, 입시 미술을 준비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시학원에서 수채화와 데생 등을 배우며 미술학도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어느 날 ‘붓’을 버리고 ‘공간’을 선택했다.

“물감을 배합하는데 물감의 양이 좀 모자랐어요. 색깔이 안맞는 건 당연했죠. 디자인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건 굉장히 꼼꼼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이게 미술이야, 뭐야?’ 하는 회의가 들었고, 그 길로 덩어리(조소)로 바꾸었죠. 조소는 가끔 화나면 부셔도 되거든요(웃음). 다시 만들면 되니까.”

오직 조각만이 삶의 전부이던 그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선 데에는 1990년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배경이 된다.

“그전까지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학 졸업 후 독일 쾰른대학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죠. 쾰른대가 철조로 유명하거든요. 그러다 독일이 통일이 되면서 유학생들을 잘 안 받는 상황이 됐어요. 유학이 몇 년 미뤄졌으니 ‘그럼 유학 자금이나 벌자’는 생각에 음반을 내게 됐죠.”

그 음반이 바로 1집 ‘내일을 향해’다.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테리우스’는 그렇게 탄생됐다. 만일 예정대로 유학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운명이라는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학을 갔으면 음악은 안 했을 거예요. 아마 지금쯤 학교에서 강의하고 있겠죠. 그럼 지금처럼 행복할까요? 미술만 했으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작품을 만들 때, (예술적인 의미에서) 깊게 들어간 뒤 현실로 나오게 되거든요. 추상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거죠. 연예인으로 대중 곁에 있었던 덕분이죠.”

그는 돌과 주물로 작업을 해왔다. 나무도 애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는 특성 때문에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그가 주물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시간을 표현하다 보니 흐르는 성질의 재료가 좋아서”다. 그가 주목하는 게 바로 ‘시간의 흐름’이다.

“ ‘과거’라는 시간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을 표현해요. 흐르는 것은 현재 시간이고, 그 출발이 되는 지점은 과거, 흐르고 난 지점은 미래겠죠. 과거의 시간 그게 후회일 수도 있고, 내가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는 것들일 수 있어요. 시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모든 예술은 시간이 밑바탕이 되니까요. 기억이나 추억 모든 과정이 시간과 연결돼 있어요.”

작품명이 ‘모반’인 만큼 어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군으로, 홀로 남매를 키웠다.

“어머니가 건강하신 건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머니께 항상 하는 말이, ‘엄마가 아프면 내가 밖에서 일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늘 옆에서 많이 챙겨드리려고 해요. 장가를 안 가서 요즘 제가 딸 노릇, 아들 노릇 다 하고 있습니다(웃음). 지난 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고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셨어요.”
30년 넘은 내공, 나도 요리 왕
실제로 신성우는 SBS ‘룸메이트’와 MBC ‘7인의 식객’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요리 잘하고, 수다스러운 모습 덕분에 ‘신엄마’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그가 모처럼 예능을 선택한 이유는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해마다 뮤지컬에 출연하고 있지만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들었던 것. 특히 ‘룸메이트’는 어린 친구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그는 아이돌 그룹 EXO 찬열과 콤비를 이뤘고, 박봄 · 조세호 · 나나 등과는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다.

“처음에는 저를 어려워했지만, 나중에는 다들 친해졌어요. 대부분 아들뻘에 딸뻘이예요. 그런데 그 친구들과 어울려보니 저도 (정신적으로) 어리더라고요(웃음).”

평소 지인들로부터 요리 솜씨가 좋다는 평을 듣는 신성우는 지난해 ‘7인의 식객’에서도 고난도의 캠핑 요리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아비뇽 캠핑장에서 해물된장쌀국수와 김치볶음밥을 선보인 것. 정교한 칼질은 물론 김치볶음밥에 굴소스를 첨가하는 깨알 팁 등이 심상치 않은 그의 요리 내공을 말해줬다. 실제로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며 다져온, 역사가 있는 요리 실력이다. 그가 잘하는 메뉴 중 하나인 파스타는 이탈리아 여행 중 현지인에게 직접 배웠는데, 그의 한 지인은 “신성우표 파스타는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그것보다 훌륭하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요리는 컴퓨터와 같아요. 컴퓨터는 OS(운영 체제) 몇 번 깔고 본체까지 뜯어보면 스스로 터득하게 되듯이, 요리도 많이 하다 보면 늘게 돼 있어요. 원리를 알게 되기 때문이죠. 한국 요리는 마늘 · 고추장 · 간장 · 된장을, 일본 요리는 간장과 설탕을, 이탈리아 요리는 마늘 · 올리브오일 · 허브만 잘 다루면 돼요. 탕을 할 때는 어떻게 불을 쓰고, 볶음을 할 때는 몇 분 안에 완성하면 좋은지…. 이런 감각이 쌓이면 요리를 잘하게 되는 거죠.”

그는 최근 방송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먹방’ ‘쿡방’에 대해서도 남다른 감상평을 던졌다.

“(차)승원이는 요리에 재미를 많이 붙인 것 같더라고요. ‘삼시세끼’에서 짬뽕 만드는 것을 보고 느꼈죠.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김풍이 정말 재미있어요. 만화 가게 주인의 레시피라니…(웃음), 상상만 해도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보통 셰프들은 공식에 대입해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김풍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더라고요(웃음).”

방송 말고도 그는 뮤지컬 무대에 쉬지 않고 서고 있다. 그동안 그가 참여한 뮤지컬은 ‘드라큘라’를 비롯해 ‘잭 더 리퍼’ ‘삼총사’ ‘모차르트, 오페라 락’ 등, 경력도 10년이 넘는다.

“뮤지컬 배우로 열심히 살다가 작품이 끝나면 아무 생각 없이 두 달 정도 놀아요. 그러다 ‘어디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일해야 할 것 같으면 공연하고… .

1년에 반 정도는 일하고 나머지 반은 휴식으로 쓰는 것 같아요(웃음).”

가수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1992년 ‘내일을 향해’로 데뷔한 그는 ‘서시’ ‘노을에 기댄 이유’ ‘꿈이라는 건 ’ ‘뭐야 이건’ ‘재회’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모두 그의 자작곡이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콘서트 무대에는 꾸준히 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필리핀과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최근 신해철 추모 공연 ‘넥스트 포에버’ 무대에도 서 로커로서 건재함을 알렸다. 조만간 새 음반도 발표할 예정이다.

“음악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데뷔하고 매년 음반을 냈는데, 당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창작을 위한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죠. 하지만 피고름을 짜냈던 자리가 서서히 아물었고, 그 덕에 좋은 음악도 만들었다고 자부해요.”

1990년대를 군림한 가수로서 그에게 최근 불고 있는 복고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신성우는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마냥 좋다. 어렸기에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도 있지만 패기 넘쳤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고 말했다.
‘2015 봄나들이 한일 교류전’에 참가한 류호열 · 장형택 · 조현수 작가와 함께.
‘2015 봄나들이 한일 교류전’에 참가한 류호열 · 장형택 · 조현수 작가와 함께.

어리지만 이해심 깊은 여자친구와 교제 중
어느덧 4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그에게 연애와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 연애사 공개에 인색했던 그가 의외로 현재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만난 지 3년 된 여자친구는 그보다 나이가 꽤 많이 어리고,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며,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제가 뭘 한다고 해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경우에 어긋난 것까지는 아니고요(웃음). 아직은 어려서 철이 좀 없나 싶지만, 그래도 착해요(웃음). 사랑도 의리라고 생각해서 여자친구한테 종종 ‘의리를 지키자’고 얘기하죠(웃음).”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요즘 문득문득 장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신성우는 “결혼은 자리 잡고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많이 늦어졌다. 하지만 언제 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른이 돼 결혼하는 것까지 보면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록 결혼은 안 했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양육 철칙은 있어요. 아들이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방목하고, 딸이면 땅에 내려놓지도 않을 만큼 호호 불며 귀하게 키울 거예요(웃음).”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는 뮤지컬, 연기, 조각 등 다양한 채널로 대중과 소통하며 ‘재미’를 추구할 예정이다. “재미가 있어야 영혼을 바칠 만큼 몰입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그는 “음악이든, 조각이든, 연기든 모든 영역이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결국 ‘예술’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품은 자화상 같은 노래도 하나 만들 계획이다.

“내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표현할 수 있는 노래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만인에게 불리지 않아도 좋아요. 나이 들어 친구들 앞에서 한번 부르고, 죽기 전에 한번 부를 거예요. 자전적 노래를 만들려면 먼저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기획 · 김유림 기자 | 글 · 두경아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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