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정서적 안정감 주면 ‘공부 근력’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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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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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공부력’이다]<3>아이에게 주는 스트레스, 공부력 낮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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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 대처능력’이다. 스트레스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공부력’의 핵심 요소다. 진학사 청소년교육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많은 부분이 부모,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다른 두 엄마와 자녀의 사례를 살펴보자. 둘은 모두 연구소에서 공부력 검사와 상담을 거쳤다. 》

○ 믿고 맡긴 종현이 vs 일일이 챙겨준 유민이

“종현 엄마, 이번에 큰아들 대학 보냈다며? 고생했네, 이제 둘째만 남았네!”

이정은(가명·49) 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한다. 아들이 스스로 대학에 갔지 자신이 보낸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학교나 학원 생활은 종현이에게 맡기는 편이었고,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거나 의견을 구해올 때면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편이었다. 종현이는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 나갔고, 스포츠 마케터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서울 한 대학의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올해 중3인 둘째 성현이는 “제빵사가 되고 싶다”며 요리사를 장래 희망으로 정했다. 성현이는 형보다 공부를 잘해서 이 씨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성현이는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를 목표로 특성화고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 엄마들은 “공부 잘하는 애를 인문계 보내야지 무슨 요리냐”며 난리지만 이 씨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무심한 듯한 이 씨와는 달리 김정숙(가명·46) 씨는 딸 교육에 열심이다. 김 씨의 딸 유민이는 올해 중3. 모녀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김 씨는 며칠 전 딸의 담임교사를 만나 하소연했다. “선생님, 딱 대놓고 ‘넌 지금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을 해주세요. 좋게 얘기하면 얘는 이해를 못 해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 공부를 하죠….” 그 옆에서 유민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김 씨는 “성공하라고 뒷바라지하는 엄마 마음을 딸이 모른다”며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성적이 오르기는커녕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걱정했다. 딸이 불성실하다고 생각하는 김 씨는 최근 학습 강도가 센 학원에 보내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상담 결과 유민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더 잘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자 지치기 시작했다. 유민이는 “엄마한테 떠밀려 어학연수를 갔는데 너무 외롭고 친구도 없이 지내다 왔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잔소리만 했다”고 털어놨다.

○ 부모의 태도가 자녀의 능력을 결정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할 때 자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적이나 진학 결과를 부모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일 때 스트레스가 극대화된다는 의미다. 이런 부모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는 부모의 스트레스를 그대로 닮아가고, 부모와 자녀의 사이에는 상처가 깊어진다. 자녀의 스트레스 대처능력은 자연히 약해진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은 공부하듯 암기해서 생기지 않는다. 유민이 사례처럼 부모의 불안 상태가 지속되면 자녀 역시 공부를 이어나가기 힘들다. 부모가 제3자 앞에서 감정적인 언어를 그대로 표출하고 아이를 질타하면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면 종현이 엄마처럼 부모가 자녀를 믿고 정서적인 인정감을 부여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의 동기를 찾는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란 토대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생겨도 잘 이겨낸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무 몰입해서 함께 흔들리는 것보다는, 곁에서 조금 떨어져 지켜보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교육’ 이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부모가 자신의 의미를 찾고 삶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녀에게 몰두해야 자녀가 잘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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