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선 무너질라… 한국 환율 근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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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때 902.47… 7년만의 최저 수준 떨어져
日과 직접경쟁 기계-석유화학 업종 타격 불가피

원-엔 환율의 900원 선(100엔당)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8년 3월 초 900원대로 올라선 원-엔 환율은 그 후 7년 1개월여 동안 한 번도 800원대로 내려간 적이 없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 환율은 이날 오후 한때 902.47원까지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가 903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가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및 엔-달러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일주일간 14원가량 급락한 원-엔 환율이 조만간 8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엔 환율의 하락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유입되며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 반해, 엔화는 일본 통화완화책의 영향으로 약세 국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경제동향실장은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다”며 “반면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원화의 상대적 강세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연평균 900원으로 떨어지면 기업들의 총수출이 작년보다 8.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설문에서 453개 수출기업의 손익분기점 원-엔 환율은 평균 972.2원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는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기계류와 석유화학, 선박 등을 비롯해 대(對)일본 수출 비중이 많은 문화콘텐츠 업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국제 정치 환경도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엔화 약세를 극복하려면 원-달러 환율 상승을 통해 원화 약세를 유도해야 하지만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은 아베노믹스는 묵인하면서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이러다가는 ‘환율 하락-경상수지 악화-자본 유출’의 ‘위기 사이클’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환율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에 주력하면서 추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일본 통화 정책과 그리스 문제 등 국제금융시장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 / 세종=손영일 기자
#한국#환율#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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