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중력에 맞서 한 발 한 발… 저 바위 끝엔 두려움 없는 내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네파 아웃도어스쿨과 함께하는 한국등산학교

한국등산학교는 도봉산 매표소에서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등산학교가 자리한 도봉산 대피소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국립공원 안 산장’. 1994년 문을 연 한국등산학교는 그동안 1만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암벽등반의 메카다. 네파 아웃도어스쿨에서 진행한 이번 도전은 한국등산학교다.

첫날 일정은 슬랩등반으로 시작했다. 슬랩(slab)은 ‘평평하고 매끄러운 바위’를 가리키는 등산용어. 암벽등반의 기본인 비탈진 바위 구간을 이동하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교육 전 지급 받은 안전벨트와 안전모를 착용하고 교장으로 향했다.

교장은 대피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 강사로 나선 네파 홍보대사이자 한국등산학교 교장인 장봉완 강사는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다시 한번 안전에 대해 강조했다. 안전벨트에 부착된 카라비너(등반할 때 로프를 잇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주로 D자가 많고 개폐구가 있다)와 하강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전벨트는 허리에 단단히 고정돼 있는지를 일일이 체크했다. 암벽등반의 기본은 뭐니뭐니 해도 안전이다. 자기 확보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설치해 놓은 확보줄에 카라비너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추락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교장으로 사용되는 바위는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있었다. 이곳처럼 경사가 완만한 구간을 ‘소(小)슬랩’이라 부른다. 암벽화를 신으면 별도의 장비 없이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지만 무게중심 이동에 익숙지 않은 암벽 초보자들에겐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다.

오늘 교육의 목적은 비탈진 구간에서 몸의 중심 이동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 슬랩등반의 기초는 몸의 중심을 중력선에 맞추는 것에 있다. 평지에선 몸과 지면이 수직을 이뤄야 하지만 비탈진 곳에선 경사에 따라 몸과 지면의 각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등산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단순히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것에서 나아가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늘었다. 전문 기술이 없는 초보자들도 등산학교 등의 교육 과정을 거쳐 기초자세를 익히면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네파 제공
등산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단순히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것에서 나아가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늘었다. 전문 기술이 없는 초보자들도 등산학교 등의 교육 과정을 거쳐 기초자세를 익히면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네파 제공
신발끈 단단히 조여 맬 때만 해도 해볼 만하다 싶었다. 한데 바위머리에 서고 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바짝 세우라’거나 ‘마찰력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설명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지만 어렵게 첫 발을 떼고 나니 몸은 자연스럽게 상황에 적응해 갔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역시 정답은 머리가 아닌 몸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교장을 몇 번 오르내리는 사이 나름 요령이라는 것도 생겼다. 이 덕분에 웬만한 경사에서는 손을 짚지 않고 오르는 호기도 부려본다. 하지만 바위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모래 같은 잔돌들은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접지력 좋은 암벽화를 신었다고 해도, 몸의 중심을 잘 잡는다고 해도, 잘게 무너져 내리는 잔돌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는 겨우내 얼었던 바위틈이 벌어져 제법 큰 돌들도 쉽게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소슬랩에 익숙해진 뒤에는 직벽 구간으로 이동해 ‘8’자 하강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하강기를 이용한 하강은 ‘8’자 모양의 하강기에 로프를 연결에 암벽을 내려오는 기술이다. 소슬랩 하강과 차이점이라면 정면이 아닌 후면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그만큼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랬다. 직벽 하강에서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강에 도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마치 눈을 감은 채 친구를 믿고 몸을 누이는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30m 높이의 암벽에서 확보 줄에 몸을 의지하는 건 그런 믿음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믿음과 확신만 있다면 하강기를 이용해 암벽을 내려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하강기와 연결된 줄을 살짝살짝 풀어주면 몸은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교장 뒤 우뚝 솟은 선인봉의 늠름한 모습에 눈길을 줄 수 있었던 건 그렇게 두어 번 직벽을 타고 내려온 뒤였다.

이튿날 교육은 좀 더 난도 높은 교장에서 진행됐다. 오늘은 이곳에서 어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실전 등반을 경험할 예정이다. 암벽은 어제의 그것보다 컸고, 가팔랐다. ‘여기를 어떻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어제 암벽을 걷고, 직벽을 내려오면서 쌓았던 자신감이 그새 꼬리를 감춘 듯했다.

하지만 역시 몸은 머리보다 많은 걸 더 빨리 기억해 냈다. 손끝과 발끝에 남아 있는 감각은 뒤로 물러서려는 몸을 바위에 단단히 지탱시켰고, 결국에는 앞으로 이끌었다. 물론 몇 번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이제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미끄러진 만큼 다시 오르면 그만이었으니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정상에 닿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좀 더 가파른 암벽은 등강기를 이용해 올랐다. 등강기를 이용해 오르는 건 맨손으로 오르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몸의 반동으로 밀어올린 등강기를 버팀목 삼아 오르니 그만큼 속도도 빨랐다.

마지막 하강은 어제와는 또 다른 도전을 요구했다. 이곳은 소슬랩과 직벽, 거기에 굴곡진 바위까지, 하강의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코스였다. 소슬랩에서 직벽까지가 어제의 경험이었다면 굴곡진 구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강하는 방법도 달랐다.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꺾인 바위 구간에선 두 발로 경계 부분을 지탱한 채 오른손의 로프를 조절해 엉덩이를 최대한 아래로 내리는 게 요령이다. 적당한 순간이 오면 로프를 풀어 쭉 뻗은 발로 균형을 잡으며 하강을 시도하면 된다. 자칫 자세가 흐트러지면 돌출된 부위에 얼굴이나 가슴을 부딪칠 수도 있다.

오전 11시. 그렇게 모든 교육이 마무리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디에도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려움이나 걱정은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금, 나는, 여기, 이렇게 서 있다.

네파 홍보대사 장봉완, 한국등산학교장이 전하는 초보 가이드 ▼

1. 철저한 준비운동


암벽등반은 일반 산행과 달리 평소에 사 용하지 않은 근육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 에 충분한 준비운동과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킨 뒤 시작해야 한다.

2. 암벽등반에 적당한 등산화를 신자

암벽화의 생명은 접지력이다. 일반 등산 화와 암벽화는 깔창의 재질에 차이가 있 다. 10여만 원 정도면 괜찮은 암벽용 등산화를 구입할 수 있다.

3. 철저한 장비관리를 통한 안전등반

카라비너나 하강기 등을 떨어뜨리지 않 도록 주의하고 로프는 절대 밟지 말아야 한다.

글·사진 정철훈 여행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