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가르침 받아 익히는 것은 남의 것, 나만의 맛을 찾아라 ‘세라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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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성지 ‘몽상클레르’의 비법

디저트점의 성지로 꼽히는 몽상클레르를 창업한 쓰지구치 히로노부 셰프가 일본 도쿄의 몽상클레르 매장에서 대표작인 ‘세라비’를 들어보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몽상클레르 제공
디저트점의 성지로 꼽히는 몽상클레르를 창업한 쓰지구치 히로노부 셰프가 일본 도쿄의 몽상클레르 매장에서 대표작인 ‘세라비’를 들어보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몽상클레르 제공
디저트는 찬란함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과 함께 맛보는 디저트는 더욱 그렇다. 일본 도쿄(東京)의 부촌인 지유가오카(自由が丘)에 자리한 디저트점인 ‘몽상클레르’는 이런 찬란한 행복의 전령사가 되고 싶어 한다. 몽상클레르의 쓰지구치 히로노부(십口博啓·48) 오너 셰프가 만든 케이크와 과자는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생과자와 케이크 등 디저트 130여 종을 판매하는 이곳에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몽상클레르가 ‘디저트의 성지(聖地)’로 통하는 이유다.

몽상클레르
몽상클레르
일본 이시키와 현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한 화과자(和菓子·일본의 전통과자)점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23세이던 1990년 일본 최대 제과대회인 ‘전국 양과자 기술경연대회’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뒤 각종 제과대회를 휩쓸었다. 2013년에는 ‘초콜릿의 미슐랭’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C.C.C(Club des Croqueurs de Chocolat) 평가단에서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받았다. 그의 인생은 올해 3월부터 NHK에서 156부작 드라마인 ‘마레’로 방영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몽상클레르의 시크릿 레시피’(176쪽·1만8000원·동아일보사)라는 책을 발간해 30여 년간 일궈온 자신의 디저트 비법을 공개했다. 동아일보 Q섹션은 쓰지구치 셰프를 e메일 인터뷰했다.

화과자의 향기를 맡고 자란 그가 양과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것은 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 쇼트케이크(카스텔라를 겹친 사이나 위에 크림, 과일, 초콜릿 따위를 얹은 케이크)를 먹고 나서부터다. “공기를 가득 품은 푹신한 스펀지케이크와 달콤한 크림에 감동했어요. ‘이토록 달콤한 맛이 있다니….’ 이후 양과자 장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1985년 아버지의 화과자 전문점이 도산했다. 그는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했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하면서도 유명한 디저트점의 쓰레기통 등을 뒤져서라도 식재료를 연구하고 메모했다. 연습 삼아 디저트를 만들며 2시간밖에 못 자는 날도 허다했다.

세라비
“수천, 수만 번의 실패를 맛본 시간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과자점은 망했지만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분명하죠. 맛을 내는 것은 누구로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죠. 가르침을 받아서 익히는 기술이라면 이미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죠. 나만의 맛, 즉 독창성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쓰지구치 셰프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디저트인 ‘세라비(C‘est la vie)’가 그렇다. 이는 프랑스어로 ‘이것이 인생’이라는 뜻으로 ‘내 인생을 대범하게 개척하겠다’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네뜨
“다크 초콜릿보다 화이트 초콜릿이 맛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던 시절이었죠. 화이트 초콜릿을 주(主)재료로 선택하는 파격을 감행했어요. 화이트 초콜릿을 쓰면 너무 달고 우유 맛이 강하게 풍겨 나왔습니다. 때문에 초콜릿 무스와 산딸기로 새콤함을 더하고, 진하게 구운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넣어 쌉쌀한 견과류 맛을 더해 균형을 맞췄지요.”

쓰지구치 셰프는 1996년 프랑스 식품진흥회인 소펙사(SOPEXA)가 주최한 과자 콩쿠르에서 세라비를 선보여 우승했다. 이 디저트는 도쿄 몽상클레르뿐 아니라 서울 반얀트리 클럽동에 위치한 몽상클레르 매장에서도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프로마주 크뤼
프로마주 크뤼
그는 “파티시에의 창의성은 순간 생겨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 가지 재료를 100차례가 넘게 맛본 적도 있다”며 “어떤 맛을 내는지 알아야 머릿속의 ‘맛 창고’에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저트 만들기는 재료와의 싸움과 다름없죠. 다만 재료에 익숙해지면 재료 특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재료에 ‘집착’ 하는 편입니다. 과자의 기본인 설탕을 예로 들어 볼까요. 머랭(달걀 흰자에 설탕과 약간의 향료를 넣어 거품 낸 뒤에 낮은 온도의 오븐에서 구운 것)의 경우 설탕을 조금씩 넣으며 거품을 올릴 때와 설탕을 한꺼번에 넣고 거품을 올릴 때 기포의 크기나 머랭의 굳기가 달라져요. 재료를 다스릴 줄 알아야 맛의 균형을 맞출 수 있고, 이게 곧 파티시에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스티스 마르세유
파스티스 마르세유
쓰지구치 셰프는 최근 디저트의 화두는 ‘건강함’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2011년 베트남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녹차를 쓰는 ‘프리미엄 티 전문 브랜드인 ‘쓰지구치 다원’을 운영하면서 디저트 재료로 쓰고 있다. 또 일본 미에(三重) 현에도 딸기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신선한 딸기를 직접 공수해서 쓴다. 딸기는 짓물러지기 쉬워 어느 과일보다도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딸기를 직접 선별해 쓰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의 디저트 철학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손님들은 가장 찬란한 순간, 그 자체를 기억하기를 원해요. 최고의 디저트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지요. 따라서 파티시에는 단순히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루 16∼18시간 디저트와 함께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워집니다. 긍정적인 기운을 받은 디저트는 경쾌할 수밖에요.”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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