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02>환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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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 ―정수자(1957∼ )

속눈썹 좀 떨었으면
세상은 내 편이었을까

울음으로 짝을 안는 귀뚜라미 명기(鳴器)거나 울음으로 국경을 넘던 흉노족의 명적(鳴鏑)이거나 울음으로 젖 물리던 에밀레종 명동(鳴動)이거나 울음으로 산을 옮기는 둔황의 그 비단 명사(鳴砂)거나 아으 방짜의 방짜 울음 같은 구음(口音) 같은 맥놀이만 하염없이 아스라이 그리다가

다 늦어 방향을 수습하네
바람의 행간을 수선하네

속눈썹이 길면 눈이 한층 정감 어려 보인다. 혼자 지프를 몰고 호주의 오지를 여행한 여성 화가가 있었다. 어느 늦은 밤, 그녀는 꼬박 한나절 만에 만난 민가를 두드려 음식을 청했는데 동양인과 말을 나눌 엄두를 못 냈던 그 집 주부, 타조 사진과 캥거루 사진을 보여주며 어느 쪽을 먹겠느냐고 물었단다. 화가는 캥거루를 택했는데 이유는 타조 눈이 너무 예뻤기 때문. 아마 타조도 속눈썹이 길지? 여자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 남자의 마음도 떨리리.

실력 없어도 ‘속눈썹 좀 떨면’ 존재를 인정받고 편히 사는 세상, 화자는 이제야 세상 돌아가는 속내를 깨닫고 이만저만 어이없고 섭섭한 게 아니다. 화자라고 떨 속눈썹이 없겠는가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단다. 그러면 어떻게 살았느냐? 이 멋들어진 사설시조(辭說時調)의 중장에 대차고 유장하게 흐르는 사설을 보라. ‘울음으로 짝을 안는 귀뚜라미 명기(鳴器)거나 울음으로 국경을 넘던 흉노족의 명적(鳴鏑)이거나 울음으로 젖 물리던 에밀레종 명동(鳴動)이거나’…! 울 명(鳴)으로 시작되는 두 글자 명사마다 강세(强勢)가 ‘방짜 중의 방짜’ 징소리처럼, 심벌즈 소리처럼 쟁쟁 울리지 않는가. “얼쑤!” 추임새가 절로 들어간다. 시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비트(beat)라는 걸 체감시키는 사설이다. 이렇게 살아왔다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시인의 꿈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그 꿈으로 입은 듯한 손해가 주는 환멸도 크리라. 속눈썹 떨기와 진정성의 대결인가. 종장에 담긴 뜻이 방향을 바꿔 달리 살겠노라는 게 아니기를! 속눈썹 아무나 떠나요. 당신의 힘은 진정성에 있을레라.

황인숙 시인
#환향#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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