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은행 송금실적 ‘0’,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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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동포 밀집 서울 대림동 가보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골목의 환전소 모습. 대림동 차이나타운에는 10여 개의 환전소가 영업 중이며 일부 환전소는 불법 환치기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골목의 환전소 모습. 대림동 차이나타운에는 10여 개의 환전소가 영업 중이며 일부 환전소는 불법 환치기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저씨. 오늘 환율 얼마예요?”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주변의 한 환전소. 한 남자가 환전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유리벽 안쪽에 앉은 환전상에게 환율을 물었다. 환전소 주인은 안경 너머로 남자를 힐끗 보더니 “우 리우리우(566)”라고 답했다. 100만 원당 5660위안을 쳐준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대답만 듣고는 환전소에서 나갔다.

환전상은 “환전은 단골을 정해 놓고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환전소를 돌아다니며 환율을 묻는 고객은 대부분 송금하려는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골목에 있는 일부 환전소들은 중국에 연락책을 두고 환치기 영업을 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등 중국 동포 밀집지역에서 환전소를 이용한 환치기 영업이 기승을 부리면서 금융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전소를 통한 환치기는 송금 기록이 남지 않아 탈세와 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대림역 인근에 있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위안화 송금 실적이 거의 없다. 대림동에만 약 2만 명의 중국동포가 거주하고 있어 중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수요가 많을 것 같지만 송금하려고 은행을 찾는 중국 동포는 거의 없다. 차이나타운 골목 입구에 있는 하나은행 대림출장소에만 간간이 송금 고객이 들를 뿐 나머지 은행들은 송금 수요가 ‘0’에 가깝다.

대림동의 한 시중은행 지점 관계자는 “아무리 환율을 우대해줘도 중국 동포들이 은행에서 송금 거래를 하지 않는다”며 “차이나타운에 있는 일부 환전소를 이용해 중국으로 돈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에는 10여 개의 환전소가 성업 중이다. 환전소를 통한 송금은 중국동포가 원화를 환전소에 가져가면 환전소가 중국의 중개조직에 연락해 원화만큼의 위안화를 중국동포의 중국계좌에 입금해주는 식이다. 이른바 불법 환치기다.

중국동포가 환전소에서 송금하는 이유는 쉽고 빨라서다. 은행에서 중국으로 돈을 보내면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환전소를 통하면 30분 내에 송금이 끝난다. 수수료도 은행의 3분의 1 수준이다. 소액 환전만으로 점포 운영이 어려워진 환전소들도 추가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환치기 영업에 매력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역 환전소에서 불법 환치기를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내국인들까지 범죄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이런 환전소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 연계된 보이스피싱 등 내국인 범죄조직은 송금기록이 남지 않는 환전소 환치기를 더욱 선호한다. 이곳의 환전소들은 범죄자금의 송금을 도울 경우 ‘위험수당’을 별도로 챙길 수 있어 불법 환치기 영업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이곳의 한 환전소는 2월에 한 범죄조직으로부터 50억 원을 중국으로 불법 송금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뒤 이 돈을 가로챘다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3월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남성의 알몸이나 음란행위 장면을 찍은 뒤 돈을 갈취하는 ‘몸캠 피싱’ 조직이 환전소를 이용해 중국 총책에게 20억 원을 송금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환전소의 환치기 영업이 워낙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어 단속이 쉽지는 않다고 밝혔다. 중국동포가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환전소를 이용하는 등 ‘생계형 송금’ 수요도 많아 환치기 영업을 아예 뿌리 뽑기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중국동포가 송금 업무를 은행을 통해 하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환전소의 불법 영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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