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 깊숙한 지점에서부터 서서히 회오리가 객석을 향해 밀려오는 무대. 거대한 뱀이 똬리를 푸는 것처럼 생겼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수많은 책들이 뱀의 몸을 이룬다. 이 책들은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의 연구실 겸 실험실을 상징한다. 뱀의 이미지는 지혜, 지식과 맞닿는다. 또한 이 뱀은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이하 마돈크)의 중요한 소재인 시간여행을 암시한다. 몸뚱이의 중간 중간에 연도를 의미하는 수치가 새겨져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마돈크는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다. 지난 두 번의 무대와는 사뭇 다른 작품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뱀파이어, 즉 드라큐라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넘실대는 안개 속에서 붉은 실루엣을 뿌리던 드라큐라는 사라졌다. 대신 보다 인간적인 드라큐라가 프로페서V와 관객을 유혹한다. 이 ‘신종’ 드라큐라는 전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유머감각까지 지녔다. 이 덕분에 왠지 까칠하게 느껴졌던 작품이 한결 이해하기 편해졌다. 더 이상 마돈크를 ‘마니아적 뮤지컬’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반갑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신비감을 담요처럼 둘둘 두르고 있던, 유혹과 욕망의 덩어리인 드라큘라가 선사한 치명적인 매력은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 ‘예쁜 오빠’ 김호영의 변신… 국내 창작뮤지컬의 걸작품
프로페서V 역의 김호영이 제 물을 만난 작품이다. 프리실라, 라카지 등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김호영 표’ 중성적 이미지를 확실하게 벗어던졌다. 김호영을 ‘예쁜 오빠’로만 알고 있던 관객이라면 상당한 반전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김호영은 과장을 다변화된 연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그는 과장을 잘 하지만, 그의 연기가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마치 마술처럼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시켜 가벼움을 털어내 버리는 것은 김호영만의 전매특허다. 이런 연기는 직접 눈으로 봐야 실감할 수 있다.
마돈크의 넘버들은 귀에 잘 감긴다. 작곡가 박정아의 솜씨다. 멜로디가 심플하면서도 친숙해 리프라이즈 때는 따라 부르고 싶어질 정도다.
유럽 어딘가에서 가져온 라이선스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마돈크는 순수 국내 창작진에 의한 창작 뮤지컬이다. 초연과 재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과감한 변신과 도전을 선택한 창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드라큘라의 피를 마셔 영겁의 생명을 얻고 싶은 마음은 농담으로라도 없지만, 이런 작품이라면 오래 오래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