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인터뷰) 김은영 매듭장 “매듭, 끝까지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엇”

  • 입력 2015년 4월 20일 11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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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은 색을 들인 비단실을 여러 올로 짠 끈목을 사용해 매고 죄며 여러 모양을 만드는 수공예 기법이다. 김은영 매듭장(74세)은 25살 되던 해인 1965년도에 매듭을 짓기 시작해 햇수로 50년째 매듭을 짓고 있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김현진

김은영 매듭장이 처음 매듭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친정 할머니의 노리개를 통해서였다. 김 매듭장은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궁에서 나온 노리개 삼작을 봤다. 처음 보고 ‘참 예쁘고 곱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예쁘고 고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50년 가까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7살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지금의 인사동 자리에 있던 골동품 골목에 매주 갔어요. 그러다 골동품 주인이 저에게 노리개를 하나 줬는데,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예뻤어요. 매듭은 나비모양, 국화모양으로 다양하고 좌우가 대칭이었어요.”

1960년대, 매듭과의 인

생활미술학과에서 실내장식을 전공한 김은영 매듭장은 대학졸업 후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혼담이 오가면서 유학을 포기하고 ‘매듭’의 세계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당시 한국일보 문화면에 매듭 기능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로 김희진 매듭장이 지정됐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그렇게 김희진 명장과 연을 맺어 사사하며 약혼 기간 동안 매듭의 기본형을 다 배웠어요. 그러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매듭 공부를 멈추었는데, 이후 선생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셔서 실과 끈 짜는 법을 배워나갔어요. 그게 1960년대 일이에요.”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며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던 김 매듭장이 그나마 시간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매듭이었다. 늘 시간에 쪼들렸지만, 틈틈이 만든 작품으로 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까지 받았다.

“시간을 어떻게 안배하느냐가 중요했어요.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을 구분했어요. 전화를 받거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매듭짓는 시간을 만들어냈어요.”


비단실에 담긴 균형의 아름다움

벅차고 힘든 상황에서도 김 매듭장이 매듭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매듭의 매력 때문이었다. 김 매듭장은 매듭의 매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할 수 있다는 것과 단정한 아름다움을 꼽았다.

“매듭을 맺다 보면 소소한 것들은 모두 다 잊어버려요. 새벽이 될 때까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지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매듭은 중간에 끊기면 다시 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매듭에는 비단실이 주는 아름다운 균형이 있어요. 우아하고 고우면서도 은은하고 점잖아요.”

김 매듭장이 사용하는 모든 비단실은 본인이 직접 염색해서 손으로 틀에 짠 것이다. 그러한 비단실은 빛깔에서부터 촉감까지 기계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비단실에는 안구멍이 있어 빛이 굴절되어 나오는데 그를 통해 더욱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김 매듭장은 그렇게 100여 점 넘는 작품 활동 끝에, 첫 매듭을 지은 지 30년 만인 1995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6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으로 지정됐다. 김매듭장의 작품에는 옛것을 복원해낸 복원품이 많은데, 그 고풍스러움에 대중의 마음이 움직였다.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것의 의미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생활 속에 전통을 녹아들게 하는 것은 더 어렵다. 전통과 현재의 조화는 모든 ‘장이’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해요. 3년 전에는 조명을 하시는 교수님과 협업한 ‘매듭등’으로 특허를 받기도 했어요. 이러한 노력은 매듭을 생활 속에 밀접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김 매듭장은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 매듭을 중시하는데, 매듭으로 만든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도 그 예이다.

옷에 활용할 수 있는 매듭도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여름을 나게 하는 모시의 적삼단추 매듭을 지어야 했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매듭을 지을 줄 알았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도 매듭짓는 법을 알고 계셨어요. 매듭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는데, 매듭짓는 일은 대체로 남자가 많이 했어요. 가마 같이 굵은 끈은 여자 손으로 짓기에는 어려웠거든요. 조선시대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매듭장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장인은 존중받는 위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김 매듭장은 전통화 속의 물건들을 실제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궁중잔치에서도 매듭의 비중은 컸는데, 김 매듭장은 의궤(儀軌,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를 찾아보며 재현할 물건을 선정한다.

“의궤를 보다보면 제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껴요. 얼마 전 그림 속에만 있는 등을 무형문화재 기능을 보유한 분께 부탁해서 제작했는데 참 예뻤어요. 그리고 그 등에 제가 만든 매듭을 달아서 불가리아 해외전에 출품하기로 했어요.”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한다는 것

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성실히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과정과 노고를 인정받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김은영 매듭장은 단지 매듭을 지어가는 과정을 즐겼을 뿐이라고 말한다. 틀에서 실을 짜고, 그 실을 염색해서 하나의 매듭을 지어가는 과정은 삶의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얀 실에서 새로운 색상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성취감이 있어요. 비단실로 짠 매듭은 패물이 없어도 정말 예뻐요. 매듭은 나라마다 매는 방식과 활용법이 달라서 끊임없이 배워 나가야 해요.”

한국은 끈을 반으로 곱접은 중심에서 매듭을 시작하는 반면, 서양은 줄을 짧게 끊어서 미리 맨 후에 그 줄끼리 연결한다. 또 한국에서는 끈목을 매고 죄어서 매듭을 짓는데, 일본이나 중국은 조이지 않고 엮어만 둔다.

“얼마 전에 파리에서 액세서리 만드는 사람들이 왔어요. 그분들은 우리나라 매듭법을 사용해 각종 액세서리를 만들었는데, 저도 놀란 만한 것들이었어요. 여름에 민소매를 입을 때 팔에 가늘게 엮어서 낄 수 있는 것에서부터 참 다양하더군요. 그 발상이 놀라워서 차후에 강의용으로 사용하려고 사진으로 정리해두었어요.”


실용적 매듭의 중요성

조선시대의 매듭은 주로 궁과 사대부가에서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김 매듭장은 이에서 더 나아가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현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매듭을 연구해왔다.

“다양한 일상 소품에 매듭을 사용해보세요. 쿠션이나 스위치에도 매듭을 달아놓으면 참 예뻐요. 매듭이 달려 있으면 뭔가 여유롭고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매듭으로 인해서 흔한 생활소품들이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고 더 소중한 가치를 얻게 되는 거 같아요.”

김 매듭장은 실내장식, 액세서리 등 해마다 제자들에게 테마를 하나씩 정해준다. 올해의 테마는 주머니전이다. 옛날 수젓집 같은 것도 주머니이지만 우리가 드는 가방(bag)도 주머니이다. 김 매듭장은 제자들에게 가방의 장식물로서의 매듭을 현대물과 고전물로 모두 시도해보라고 이야기했다.

“테마를 정해온 것이 올해로 13회째예요. 13년간 열심히 배우고 따라준 제자들이 고맙고 예뻐요. 이제는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 전 세계 사람들을 다 가르쳐 봐도 한국 여성만큼 손재주가 많은 민족이 없어요. 한국은 말 꼬리털로 갓을 만드는 나라에요. 외국 사람들이 모두 놀라지요. 한국 여성들은 세계 어느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테일하고 섬세해요.”

김 매듭장은 어릴 적만 해도 매듭짓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지는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김 매듭장은 일생 매듭을 지어왔고 그 배움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김 매듭장의 매듭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김 매듭장은 손을 놀려 계속 매듭을 지어나갔다. 에디터가 무슨 매듭을 짓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국화매듭’이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쩐지 김 매듭장에게서 고운 국화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김현진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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