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지금은 사라져버린 브랜드, 그것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이해했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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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과 보물/윤준호 지음/404쪽·1만4000원·난다
‘고물과 보물’을 쓴 윤준호 교수

‘고물과 보물’을 출간한 윤준호 서울예대 교수는 “고물과 보물은 처음부터 샴쌍둥이였다”며 “새로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의 먼지를 떨어낼 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난다 제공
‘고물과 보물’을 출간한 윤준호 서울예대 교수는 “고물과 보물은 처음부터 샴쌍둥이였다”며 “새로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의 먼지를 떨어낼 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난다 제공
‘‘아이차’가 그저 빙과의 기본적 속성을 그리고 있는 것에 비해 ‘쮸쮸’는 소비자들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이름입니다. 어린이 혹은 오래오래 어린이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 동기를 기묘하게 자극합니다.’(‘삼강하드 혹은 쮸쮸바’에서)

카피라이터인 윤준호 서울예대 교수(55)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가지 브랜드에 담긴 시대의 초상을 재기발랄한 감성으로 풀어낸 ‘고물과 보물’을 펴냈다. 책에선 포니, 닭표 간장, 범표 운동화, 산토닌, 삼학 소주 등을 다룬다. 그는 10년 전 ‘20세기 브랜드에 관한 명상’이란 제목으로 48가지 브랜드 이야기를 쓴 바 있다. 이번엔 12가지 브랜드를 새롭게 추가하고 기존 원고를 대폭 수정했다.

윤 교수는 개정증보판을 출간한 이유로 “21세기 청년들에게 꼭 읽히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좌우, 지역, 정파 대립도 문제지만 내겐 세대 간 단절이 더 안타깝고 공포스러웠다”며 “윗세대와 불화를 겪는 청년들이 부모가 사용했던 브랜드 이야기를 읽고 조금이라도 이해할 구석을 찾길 바랐다”고 했다. 청년에게 읽히겠다는 목적으로 고물을 닦아 보물로 만들 듯이 지루한 부분을 과감히 덜어내고 문장도 간결하게 다듬었다.

박현웅 그림
박현웅 그림
60가지 브랜드 중 저자가 가장 애착을 갖는 브랜드는 바로 ‘삼천리호 자전거’다. 그는 책에서 “헬리콥터가 잠자리를 생각나게 하고, 자동차가 말이나 치타 같은 짐승을 연상하게 한다면 자전거는 소를 떠오르게 합니다”라고 썼다. 소처럼 가는 자전거라면 복장 터질 것 같은데…. “지금 오토바이나 트럭이 하는 일을 1970, 80년대엔 자전거가 했어요. 자전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온몸으로, 짐승처럼 일을 했을 겁니다. 쌀가마니 날라 주고, 전보를 전하고, 짜장면을 배달하고…. 우리가 농경시대를 벗어나는 데 자전거는 엄청난 일을 했어요.”

윤 교수는 다시 보물로 만들고 싶은 브랜드로 ‘삼중당문고’를 골랐다. 그는 책에서 “‘삼중당문고’란 이름에 향수를 갖는 분들이라면, 지금 어디서든 그 시절에 읽은 책값의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를 진작 뽑아내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라고 풀이했다. 인터뷰 내내 조근조근 말하던 그가 대뜸 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에 구호가 필요하다면 ‘공부하자! 대한민국’으로 하고 싶어요. 경제가 어려워서, 책값이 비싸서 안 읽는다고 하지 말고 문고본 붐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책은 절대 우릴 괴롭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윤 교수는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시도 쓴다. 1987년 등단해 ‘삼천리호 자전거’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시도 브랜드, 사물을 소재로 쓴 것이 많다. 그는 “시는 받아쓰기”라며 “관념적인 이야기보다 이웃, 물건, 꽃이 내게 받아쓰라고 불러주는 것을 주로 옮긴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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