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신간소개] 정길연 소설집 ‘우연한 생’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4월 17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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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변명>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정길연이 8년 만에 신작 소설집 <우연한 생>을 내놨다. 올해로 등단 31주년을 맞은 작가 특유의 명확한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한층 뚜렷해진 이번 소설집에서는 일그러진 가족, 연인관계를 조명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연민 때문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하는 여성, 속악한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읽다보면 현실의 고통이 그대로 전이돼 가슴을 아리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일의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묵히 아주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기계화된 감정에 지배당하고 진짜 감정에 인색한 요즘 시대에 상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연민’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에게 연민이란 빛나는 내일을 파괴할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시대에 작가는 연민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은 여성들을 그렸다.

소설집의 첫 단편 <수상한 시간들>의 여성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잘 알지도 못하는 옛 회사 동료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식까지 떠맡게 된다. 어느 누구도 강요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외면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모두 나와 이웃의 이야기다. 작가는 여성들의 희생과 고통, 연민을 얘기하지만, 끝내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연한 생/ 정길연 지음/ 은행나무/ 316쪽/ 1만3000원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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