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곡동 재력가 할머니’ 살인 사건의 피고인인 정모 씨(60)가 재판에서 “제3자가 범행을 저질렀고 당시 나는 간질 발작으로 쓰러져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 심리로 17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정 씨는 사건 당일 피해자 함모 씨(86·여·사망)를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뇨를 앓고 있던 피해자를 찾아가 건강식품 구매를 부탁하러 간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정 씨는 “내가 찾아갔을 때 남자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다”며 제3의 인물이 있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함 씨가 나를 밀어내는 바람에 식탁에 걸려 넘어져 20~30분 간 정신을 잃었다. 그 뒤에 깨어나 함 씨 방문을 열어보지 않고 ‘할머니 저 갈게요’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옷에서 나온 피해자의 혈흔, 피해자의 손톱에 묻어있던 본인의 타액 등 수사기관이 제시한 각종 범행 흔적에 대해서는 “제3자가 내가 범행을 저지른 것처럼 이곳저곳에 남겨 꾸민 것”이라고 결백을 호소했다.
검찰은 2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다가구주택 2층에서 휴대전화 충전케이블로 양손을 묶고 목을 졸라 함 씨를 살해한 혐의로 정 씨를 구속 기소했다.
정 씨는 “평소 앓고 있던 간질로 길거리에서 여러 번 실려 간 적이 있다. 하도 잘 쓰러지고 기절해서 근무하던 업체 사장과 아내를 대동해 공증까지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 씨 측 변호인은 수용자 진료기록부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다”는 문구를 들어 정 씨의 정신감정 의뢰를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정 씨 변호인은 “사건 당일에는 병원 진료를 받거나 지인들과 화투를 쳤는데 살인을 저질렀다면 이처럼 일상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사건 이후 정 씨가 자신의 주거지를 떠나지 않은 점 등을 미뤄 무죄가 맞다”고 변론했다.
정 씨는 재판부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뒤 “현장에 CCTV가 있는데 살인을 계획했다면 굳이 또 다시 CCTV가 있는 쪽으로 갔겠느냐”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또 채무관계에 얽힌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는 기소에 대해 “함 씨에게 갚을 돈은 전화비 20만 원이 전부였다. 고작 그 돈을 갖고 사람을 죽였겠나”라고 되물으며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