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땅 은행에 맡겼더니… 임대수익 생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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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트러스트’ 자산가들 관심

서울 강남 인근에 4층짜리 오피스 건물을 갖고 있는 김모 씨(57)는 지난해 4월 하나은행 부동산 신탁부에 자신의 건물을 ‘통째로’ 맡겼다. 은행에 건물관리를 모두 위임한 것이다. 건물 입지가 나쁘지 않은데도 공실이 많고 임대수익이 적어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건물을 위탁받은 하나은행이 확인해 보니 김 씨 빌딩의 임대료는 주변 건물보다 낮았다. 주변 건물에 비해 층수가 낮아 다른 건물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게 최대 단점이었다. 은행은 4층짜리 기존 건물을 허물고 8층으로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건물이 다 지어진 뒤에는 은행 신탁부 직원들이 주변 공인중개업소를 돌며 임차인을 구했다. 김 씨가 이 건물에서 거둬들이는 월 수익은 1700만 원에서 4700만 원으로 176%나 껑충 뛰었다.

최근 은행이 건물을 위탁받아 건물의 자산가치와 임대료 수익을 높여주는 ‘부동산 트러스트’가 자산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관리부터 신축까지 한번에

부동산 트러스트는 은행이 일정한 수수료를 받으면서 건물의 관리와 리모델링, 신축, 시공, 임대까지 모두 대행하고 건물 주인은 임대수익만 챙기는 자산관리 서비스다. 수수료는 임대수익의 4% 정도. 현재 하나은행이 가장 적극적으로 부동산 트러스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KB국민, 신한은행 등도 유사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건물주의 위탁을 받은 은행은 우선 건물과 관련한 금융, 세무, 회계, 법률문제 등을 검토해 효율적으로 건물을 관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일들을 처리한다. 다음으로 건물 임대료가 주위 건물과 비교해 적정한지 판단한다. 새로 짓는 것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신축하기도 한다. 시공사, 인테리어 회사 등의 선정도 은행의 몫이다. 건물이 완공된 뒤 새 임차인을 구하는 일도 서비스에 포함돼 있다. 주변 공인중개업소를 돌며 건물을 홍보하고 적정 임대료를 산정해 임차인에게 공급한다.

건물 없이 땅만 가지고 있는 자산가도 부동산 트러스트를 이용할 수 있다. 최모 씨(62)는 최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빈터를 부동산 트러스트에 맡겨 지상 7층 규모의 건물을 올렸다. 이를 통해 월 3500만 원의 임대수익을 챙기고 있다.

○ 고령 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

부동산 트러스트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계층은 고령 자산가다. 연령대가 높은 자산가들은 임차인을 직접 상대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거나, 건강 문제 등으로 건물 관리에 소홀해 적정한 임대료를 챙기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건물 가격이 올라가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낮았다”며 “고령 자산가 중에는 예전의 습관 때문에 임차인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부모의 사망으로 건물을 상속받은 자녀들도 부동산 트러스트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다. 상속인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 건물을 관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해외에 거주해 건물을 관리하기 어려운 경우에 부동산 트러스트 서비스를 받으면 편리하다. 상속인이 여러 명이라 일원화된 건물 관리가 어려울 때에도 부동산 트러스트를 활용하면 좋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연간 10여 건 수준이던 부동산 트러스트 상담이 최근 1년간(작년 4월∼올 3월) 55건으로 늘었다.

○ 상속인 계약서에 명시 분쟁 줄어

건물주가 별도의 유언이나 사전증여를 하지 않고 사망하면 건물을 둘러싸고 가족 간의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트러스트의 장점 중 하나는 건물주가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녀들의 상속 분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과 건물관리 신탁 계약을 맺을 때 건물주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사망할 때 누구에게 상속할지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다. 미성년자인 자녀가 상속을 받을 때에는 부동산 트러스트를 통해 일정 기간 은행에 관리를 맡겨 건물의 자산 가치를 유지하다가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상속받도록 할 수도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신탁팀장은 “부동산 트러스트는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고령화 시대에 맞춰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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