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외동딸인 제게 언니가 생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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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고 11년째 세자매 결연운동
교복-참고서 물려주고 진학 조언… 학교폭력도 줄어 ‘일석삼조’ 효과

세 자매 결연을 맺은 충남여고 2학년 주은지, 3학년 신유리, 1학년 이다솔 양(왼쪽부터)이 13일 교정에서 편지와 선물을 주고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세 자매 결연을 맺은 충남여고 2학년 주은지, 3학년 신유리, 1학년 이다솔 양(왼쪽부터)이 13일 교정에서 편지와 선물을 주고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안녕 예은아, 난 2학년 4반 35번 설은양이라고 해. 넌 1학년 4반 35번이라고? 참 신기하다. 얼굴도 모르는 언니한테 편지 받아서 살짝 당황했지? 중학교 때와는 달리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힘들지. 하지만 언니한테 부탁하면 도와줄게.”

13일 오전 10시 30분 대전 중구 선화로 충남여고 운동장. 전교생 1618명이 모인 가운데 이색 행사가 열렸다. 1, 2, 3학년 같은 반, 같은 번호 학생들이 만나는 ‘세 자매 한마음 결연 상견례’다.

이 행사는 한 졸업생의 아이디어로 2004년부터 시작해 매년 실시하고 있는 행사다. 선후배가 학년 초에 자매의 연을 맺고 즐겁고 알찬 여고 생활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돼 11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2학년이 571명으로 가장 많고 1, 3학년은 각각 534명, 514명이어서 전체 학생을 세 자매로 맺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언니나 동생이 생긴다.

행사가 이어지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언니, 여동생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폭력도 거의 사라졌다. ‘언니’는 고교 생활을 설계하거나 진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교복과 체육복, 참고서를 물려주는 일도 많다.

자매의 연은 졸업 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학에 진학한 언니들이 카카오톡 등으로 동생에게 안부를 묻고 대학 생활에 대해 설명해 주면 후배들은 학구열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학교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학교 측은 상견례에 앞서 자매를 맺을 언니, 동생의 이름을 알려준 뒤 편지를 쓰도록 권고한다. 학생들은 당일 상견례에 간단한 선물도 준비한다.

상견례에 앞서 학생회는 학교 폭력 추방과 친구 사랑을 위한 결의 대회도 열었다. 고다현 학생회장(18·3학년)은 “올해에는 따돌림 및 집단 괴롭힘, 악플 달기 금지 등을 주로 실천하기로 했다”고 했다.

1학년 1반 30번 이다솔 양(16)은 “여고생이 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아직 학교 생활이 익숙지 않았는데, 2, 3학년 같은 반, 같은 번호의 은지, 유리 언니가 생겨 든든하다”며 “언니들을 자주 찾아 고민도 털어놓고 도움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전통을 상징하듯 교정에는 세 자매 결연을 상징하는 우애상도 세워져 있다. 정해중 교장은 “지난해 9월 부임한 후 이런 전통이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4월 말경 날씨가 따뜻해지면 교정에 있는 텃밭을 세 자매와 특수학급 및 장애 학생들에게 조금씩 분양해 작물도 기르며 우애를 키워 나가도록 할 예정이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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