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99>김경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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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윤 ―오하룡(1940∼ )

그는 김경윤입니다 그와 어머니는 서른 살 차이고 나와는 쉰 살 차이였습니다 나이 따위 세상을 알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나이가 걸리적거리던지 두 분 사이 어색히 여긴 일 지금도 사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떻든 이승의 한 갈래 길에서 어머니는 그의 팔을 잡게 되고 나도 그냥 그의 한쪽 팔을 잡고 동행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시원하게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른 해를 한참씩 딴 길을 가다간 다시 합류하고 딴 길을 가다간 합류하다가 그는 여든다섯에 이승을 떠나고 어머니도 그로부터 열두 해를 더 보내고 예순아홉에 떠났습니다 지금 호젓이 그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들과 동행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다만 그의 이름을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나와 동행이어서 그의 발걸음이 허둥거리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한 가족의 서사가 담긴 자전적 시다. 시인과 쉰 살 차이가 난다니 ‘그’는 1890년생이며 ‘여든다섯에 이승을’ 떠났다는 해는 1975년일 테다. 그들이 ‘동행’한 세월이 ‘서른 해’, 인연이 시작된 1945년에 시인은 만 다섯 살이다. 어린 아들이 딸린 젊은 여인이 자기보다 서른 살 가깝게 많은 남자의 ‘팔을 잡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곡절이 없을 수 없다. 종종 곡절의 요인이었을 아들, 시인은 ‘그’와 ‘한참씩 딴 길을 가다간 다시 합류하고 딴 길을 가다간 합류’했단다.

‘장화홍련’이나 ‘콩쥐팥쥐’ 같은 이야기는 제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에 대한 무정함과 미움이 사람에게는 있게 마련이라는 편견을 굳히고 그에 대한 공포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당최 곁을 주지 않거나 못되게 굴어서 계모나 계부를 외롭고 괴롭게 만드는 자식도 드물지 않다. 시인은 대놓고 삐뚤어진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와 끝내 친해지지는 못한 듯하다. 아이들은 제 부모가 나이가 너무 많으면 부끄럽게 여긴다. 하물며 할아버지 나이인 그는 친아버지도 아닌데 젊은 어머니의 남편이다. 어린 시인은 이 관계들이 마뜩지 않고 ‘그’를 대하기 어색하기만 했단다. 늘 데면데면한 손자뻘 의붓자식과의 ‘동행’이 ‘그’도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먼 옛날에서 살뜰한 추억도 없이 한숨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 ‘김경윤’. ‘나는 그를 시원하게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지금 호젓이 그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세월과 인연의 아득한 물살에 휩쓸린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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