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동용]주먹을 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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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정치부 차장
민동용 정치부 차장
개헌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다.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과 양대 정당의 기득권 체제가 낳은 정치·경제·사회적 폐해를 줄이려면 지금의 ‘대통령제’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개헌론을 펴는 이들 정치인이 선뜻 대답하기에 궁한 질문이 있다. “선출직으로 뽑아줬는데 임명직까지 하겠다고 하면 과연 국민이 납득할까?”라는 것이다. 의원내각제에서는 통상 의원들이 장관을 겸직한다. 국회의원도 모자라 장관까지 하겠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도둑놈 심보”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국회의원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 가운데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97위였다. 우리보다 정치 수준이 낮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보다도 낮았다. 다른 조사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평균 8.4%였는 데 반해 정치인과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2.6%, 4.8%에 불과했다.

특히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국민은 아예 국회의원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진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국민 대다수는 “확인해 봐야 뻔한 것 아니냐”며 마음속으로 이미 판결을 내린 듯하다. 그렇게 국회의원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 13일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건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심 원내대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특권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위해서는 국회 문턱이 대폭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비(歲費) 삭감, 특권 축소를 실천하기 위해 적정세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장난으로” 의원 수를 400명까지 늘리자고 했다.

국회의원 세비를 삭감하고 특권을 축소한다고 얼어붙은 국민의 신뢰가 녹아내릴까 의문이다. 선거철만 지나면 유권자 위에 군림하고, 상임위원회 해당 기관에는 ‘슈퍼 갑(甲)’인 의원들이 임금 좀 덜 받겠다고 해서 “잘했다”고 등 두드려 줄 국민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공·사석에서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선량(選良)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진정성이다. 민의(民意)를 더 잘 대변하기 위해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래야 내가 국회의원이 또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솝우화’에서 주둥이가 좁은 병 안의 열매를 가득 쥔 소년은 주먹을 펴고서야 손을 꺼낼 수 있었다. 열매 여러 알을 놓는, 욕심을 버려야만 했다. “나는 불출마할 테니 그래도 의원 수는 늘려야 옳다”고 부르짖을 ‘솔직한’ 의원은 정녕 없는 걸까.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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