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조선인으로 산 ‘서서평 이야기’ 영화로 만들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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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광주에 간호학회 세우고 나병환자-고아 돌보며 평생 헌신
정신적 동료 최흥종 목사와 함께 이장호 감독 ‘두 사람의 생애’ 촬영

광주 남구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가면 안내판에서 한 백인 여성의 얼굴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는 1912년 광주에 온 선교간호사로 독일계 미국인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1880∼1934·사진)이다. 그의 한국 이름은 서서평.

서서평은 서른두 살에 처음 한국에 와 천대받던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광주 남구 양림동에 이일학교와 간호학회를 세웠다. 이후 한센병(나병) 환자와 가난한 환자들의 무료 치료에 힘쓰며 평생을 살았다. 이일학교는 1961년 전주로 이전해 한일장신대의 전신이 됐다. 현재 한일장신대(완주군 상관면)에는 서서평이 생존해 있을 때 세운 기념비 등이 있고 학교 측은 그를 추모하는 창작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서서평이 설립한 간호학회는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이 됐다.

서서평은 다른 선교사처럼 조선인의 친구가 아니라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고무신을 신는 실제 조선인으로 살았다. 그는 1934년 6월 54세에 독신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소녀 13명을 입양해 교육했고 한센병 환자가 버리고 간 어린 자녀까지 양아들로 입양해 키웠다. 하지만 자신은 정작 영양실조에 걸려 반 조각 담요, 강냉이 가루가 담긴 그릇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됐다.

동아일보는 서서평이 생존해 있을 당시 그의 봉사활동을 다룬 기사를 썼고 장례식 기사도 게재했다. 그의 장례식은 많은 시민이 애도하는 광주 사회장 1호였고 시민들의 울음소리가 비행기 폭음처럼 컸다고 기사에 전한다.

서서평의 정신적 동료였던 최흥종 씨의 삶도 눈길을 끈다. 최 씨는 조선 말기인 젊은 시절 경찰인 순검생활을 하며 독립투사를 풀어줬다. 그는 한때 최 망치라는 별명으로 깡패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선교사 단체에서 우연히 동갑내기 서서평을 만난 뒤 감동을 받아 목사로 변신했다. 최 씨는 이후 ‘광주의 성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광주 YMCA를 만들고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전남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최 목사는 평생 소외계층을 돕다가 소천했다.

‘별들의 고향’ 영화감독 이장호 씨(70)는 두 사람의 삶을 다룬 ‘아름다운 생애-서서평, 최흥종’이라는 영화를 광주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이 감독은 정신적 연인 관계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 내년 말 상영할 계획이다. 이 감독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서 영화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드림타워라는 영화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조연, 단역, 엑스트라, 의상, 음악, 조연출 등을 가르쳐 ‘아름다운 생애-서서평, 최흥종’ 제작에 참여시킬 방침이다. 이 감독은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에 맞춰 스승인 고 신상옥 감독의 작품들을 상영할 예정”이라며 “광주가 아픔의 도시가 아닌 사랑과 치유의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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