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앞둔 병장에게 “암울한 미래 기다린다” 독설…무슨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14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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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말하다(김영하·문학동네·2015년)

“집안 형편도 어렵고 스펙도 변변치 않고 학벌도 시원찮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군부대에 강연을 간 작가에게 제대를 앞둔 병장이 물었다.

“음, 잘 안 될 거예요.” 뜻밖의 대답에 졸기만 하던 병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됐고, 여러분 앞에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작가는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수용소, 소련 수용소군도에 대한 연구를 소개했다.

수용소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들은 곧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 낙관주의자도, 여기서 죽고 말거라 생각하는 비관주의자도 아니었다. “여기서 나가기는 쉽지 않아. 오래지 않아 가스실로 끌려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그러기 위해 먼저 면도부터 해야겠어”라고 살아가는 비관적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비관적 현실주의라고 해서 매사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자는 건 아니다. 상황은 비관하되,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이때 즐거움은 새로 나온 사진기를 사는 것보다 이미 있는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찍는 것, 새 스마트폰을 사는 게 아니라 전화를 잠시 끄고 글을 쓰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뜻한다.

하지만 현실 속 즐거움을 누리는 일은 명분이나 도리 같은 ‘타인 지향적 윤리’를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자란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남의 결혼식에 쫓아다닌 게 한두 번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작가는 ‘감성 근육’을 키우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느끼는가, 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키우라고.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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