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시준]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늦출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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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동양학연구원장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동양학연구원장
조상을 잘 모신다는 효자가 있다. 그 효자는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할아버지보다 아버지를 먼저 모신다. 또 아버지의 집은 없지만 자신의 집은 대궐같이 지어 놓고 산다. 세상에 이런 효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실제 그런 효자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바로 그런 효자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아버지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임시정부의 관계는 헌법에 밝혀져 있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 재건한 것이라는 뜻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아버지는 그 임시정부라는 말이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도 마찬가지다. 그 전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법통’이란 ‘법의 계통이나 전통’을 일컫는 것이고 ‘계승’이란 ‘조상의 전통이나 문화유산 업적 등을 이어 나감’ 또는 ‘선임자의 뒤를 이어 받음’이란 뜻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었으며 이를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버지를 잘 모시는 효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로 정해 놓고 매년 4월 13일(실제로는 4월 11일)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해 국민과 함께 아버지의 생일을 경축하는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효자가 아닐 수 없다.

헌법에 아버지로 밝혀 놓고 아버지의 생일을 정부기념일로까지 정해 놓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아버지를 부정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 즉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다며 ‘건국 60년’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현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이나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집은 없는데 자신의 집은 대궐처럼 지어 놓았다. 2012년에 광화문 앞에 건립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년’ 사업을 통해 추진한 것으로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의 기념관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알아야 하고 또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 아버지를 중국 정부에서 크게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를 비롯하여 오래 머물던 충칭, 그리고 피난하며 잠시 머물던 항저우 전장 창사 류저우 치장 등지에 모두 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다. 광복 70주년을 맞도록 기념관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후손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국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국내가 아니라 중국에 가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만도 매년 40만 명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 다녀가고 중국 곳곳에 기념관이 설립된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자신의 집은 대궐같이 지어 놓고 집 없는 아버지의 생일만 기리면서 효자로 자처할 것인가? 이제는 아버지의 집, 즉 우리의 뿌리이자 대한민국 정당성의 근원인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동양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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