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외면’… 케네디는 ‘단교’… 클린턴 ‘반짝 악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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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쿠바 59년만에 정상회담]美 역대 대통령과 쿠바 정상의 인연
아이젠하워, 피델의 지원요청 거절… 케네디, 공산정권 전복시도까지
클린턴, 유엔서 피델과 대화-악수… 오바마-라울, 만델라 장례때 첫 조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냉대, 존 F 케네디는 단교(斷交), 빌 클린턴은 악수….

1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역대 미국 대통령과 쿠바 정상의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회담 전에 미-쿠바 정상이 마지막으로 회담을 가진 것은 59년 전인 1956년 7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쿠바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대통령 간 회담이었다. 당시 회담 장소 역시 이번과 마찬가지로 파나마였으며 회담 계기 또한 이번과 똑같은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참석이었다. 1948년 창설된 OAS에는 현재 북미와 남미 대륙의 35개 국가가 가입해 있다. 쿠바는 미국과의 단교로 1962년부터 2008년까지 OAS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2009년 이를 회복했다. 이후 쿠바 정상이 OAS에 참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활약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아이젠하워는 1959년 1월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3개월 후 미국을 방문해 경제 지원을 요청하자 그를 아예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카스트로 방미 기간에 남부 조지아 주로 골프를 치러 가면서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을 대신 내보낸 것.

이에 발끈한 카스트로 전 의장은 쿠바로 귀국하자마자 미국 기업들이 보유한 쿠바 내 토지를 전부 몰수했다. 이에 맞서 미국도 쿠바산 설탕 수입을 대폭 축소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닫기 시작한다. 카스트로 전 의장이 1960년 9월 미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격하게 포옹하고 장시간 대화를 나눈 것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이젠하워의 후임자였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1년 1월 쿠바와 아예 국교를 단절했다. 케네디는 3개월 후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까지 시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훈련시킨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을 쿠바에 침투시킨 것. 하지만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포로로 붙잡혔다. 미 정부는 같은 해 12월 몸값으로만 5300만 달러(약 578억 원)를 지불한 끝에 이들을 돌려받았다. 미국 역사에 치욕으로 남은 ‘피그스 만(Bay of Pigs) 침공 사건’이었다. 분노한 케네디는 1962년 1월 쿠바에 대한 전면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40년 가까이 닫혔던 두 나라의 관계가 잠시나마 훈풍 기미가 보였던 때는 2000년 9월.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유엔 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카스트로 전 의장과 잠시 대화를 갖고 악수를 나눈 것이다. 이어 2008년 2월 형 피델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009년 초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관계 개선을 예고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3년 12월 두 정상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장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눴다.

한편 2011년 3월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해 라울 및 피델 카스트로 형제와 만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간첩 혐의로 쿠바 감옥에 갇혀 있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 씨의 석방을 촉구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선언한 뒤 그로스 씨는 석방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양국 정상은 역사적 만남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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