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난 지금 감정노동 중” 속으로 외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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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사-악성고객 시달릴때 겉으론 웃고 속으로 욕한다면
감정조절-표현에 어려움 겪어
뇌에 자신의 상태 일깨워주면 스트레스 절반이상 줄어들어

2014년 연말을 뜨겁게 달군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은 감정노동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한국사회에 불러일으켰다. 본래 감정노동의 정의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 고객을 위해 자기감정을 어느 정도 관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0년대 초반 미국 델타항공의 여승무원을 관찰해 추출한 개념이다. 그러나 ‘고객 만족’이 최근 기업의 핵심 이슈가 되고 이른바 ‘진상’ 고객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정의는 다소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따라서 이제 감정노동을 ‘고객만족을 위해 나의 영혼과 감정을 업무(자본)에 예속시키는 행위’라고 재정의해야 할 상황이다.

흔히 ‘진상’으로 불리는 ‘악성 고객’의 수는 얼마나 될까?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악성 고객이 2∼3%, 많게는 10%가 넘는 경우도 있다. 전쟁에서도 100발의 총알 중 단 몇 발이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서비스 현장에서도 100명의 고객 중 한두 명의 악성 고객이 감정노동자들을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간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구직난이 심해지고 경기가 어려울수록 모멸감을 주는 직장 상사, 불합리한 조직구조, 선후배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어쩔 수 없이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은 사실상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자. 악성 고객이나 나쁜 직장 상사와 상대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욕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직장이 아닌 곳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에 화를 내게 된다.

해법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최근 연예인 중 많은 이들이 앓고 있어 친숙해진 ‘공황장애’라는 병과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앓았다는 ‘난독증’ 치료 사례에 힌트가 있다. 공황장애 환자가 ‘이게 육체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초기 증세 환자의 50%가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난독증 역시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 이상’이라고 깨닫는 순간 치료가 잘 된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뇌에게 현재 자신의 상태를 일깨워주면 신기하게도 많은 게 바뀐다. 만약 감정노동 상황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속으로 크게 외쳐 보자.

“이건 감정노동이야!”, “나는 지금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거야!”, “표현해야 하는 감정과 내 진짜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렇게 우리 뇌에 알려주면 우리 마음속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스트레스가 50% 이상 급감하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부신피질에서 나오던 스트레스호르몬 코르티솔이 크게 줄어든다.

우리 뇌는 참으로 바보스럽기도 하고 천재 같기도 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내가 알려줘야 하다니 황당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자신에게 알려주자. “나는 지금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라고.

김태흥 감정노동연구소 소장 taeho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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