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10>아내와 함께 영화 ‘위플래쉬’를 본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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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라는 영화 ‘위플래쉬’를 아내와 함께 본다면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난 뒤 “괜찮았다”며 웃지만 “불편하고 화났다”는 속내를 다른 데서 토로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위플래쉬’는 음악학교 신입생 앤드루가 ‘악마 교수’를 만나 거듭나는 성장 스토리를 그려낸다. 교수는 입만 열면 잔인한 말을 내뱉고 뺨을 때리며 모욕을 주고 심지어 의자를 집어던진다.

노골적인 ’자리 빼앗기 게임’을 연출한다. 드럼주자 둘을 붙여 경쟁을 시키다가 나중엔 셋을 모아놓고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흥건해질 때까지 몰아붙인다. 앤드루는 빼앗은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피 칠갑을 하고서도 콘서트홀로 달려간다.

욕설과 폭력도 그렇거니와 여성 관객들을 진정으로 짜증나게 하는 대목은 여자친구와의 신이다. 앤드루는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드럼 그만 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하겠지만 난 그러지 않을 거야. (…) 머지않아 우린 서로 미워할 거야. 아예 지금 헤어지자.”

이 영화가 한국에서 특히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잔혹할 정도로 내몰아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의 현실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문화평론가는 “제자의 가능성을 끌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승을 그린 감동 영화로 잘못 해석되는 경향도 있다”며 우려한다.

훈훈해 보이는 ‘열린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화는 위안을 주는 소통과 공감의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배신과 함정 파기, 뒤집기를 통해 서로를 망치려던 두 사람이 카네기홀 연주의 클라이맥스에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는 장면 말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소통과 공감의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따뜻해 보이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전개과정 곳곳에 뿌려진 ‘단서’들로 인해 끝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다.

남성이 원하는 스토리는 생존이 걸린 투쟁의 드라마다. 그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신입 시절 고맙던 선배와도 언젠가는 죽기 살기로 혈투를 벌여야만 한다.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다.

‘위플래쉬’는 ‘자리 빼앗기 게임’이라는 남자 세계의 본질을 그려내는 동시에 ‘갑(甲)’을 넘어 ‘갓(god)’이던 존재에게 결국 ‘빅엿’을 먹이는 판타지까지 갖춘 남자 영화다. 두 사람의 마지막 미소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우월감 혹은 야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감동과 씁쓸함이 뒤섞인 이 영화는 아내가 원하는 공감 스토리가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로 입증한다. 성공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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