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영혼의 수호신, 바리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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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는 꽃을 들고 있는 바리데기 여신. 건들바우박물관
생명을 구하는 꽃을 들고 있는 바리데기 여신. 건들바우박물관
누군가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다. 그런데 그게 때론 타인을 구하기 위한 영웅적 행동의 자양분으로 작용하여 수많은 사람의 ‘숭고한 슬픔’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니, 가히 ‘버려짐’의 히에로파니(hierophany·성스러운 출현)가 아닐 수 없다. ‘바리데기’는 바로 그러한 ‘숭고한 슬픔’의 신성(神聖) 문제를 내밀하게 다루고 있는 구전신화다.

“금년에 혼인하면 일곱 명의 공주를 보실 것입니다.” 점괘는 점괘일 뿐. 불라국의 오구대왕은 개의치 않고 왕비를 얻었다. 금실도 좋아 열 달 만에 자식도 낳았다. 딸이었다. 괜찮았다. 그러나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까지도 모두 딸이었다. “세상만사 부러울 것이 없지마는 자식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오구대왕은 장차 물려주어야 할 옥새와 조상 제사가 걱정되었다. 지나가던 도승의 조언대로,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왕비 길대부인에게 온갖 공을 들여 보게도 했다. 그러나 낳고 보니 또 딸이었다.

“전생에 무슨 죄가 그다지 많아 하늘은 나에게 일곱 딸을 주시는가?” 오구대왕은 탄식을 거듭하더니, 홧김에 명하였다. “여봐라, 그 아기를 어서 뒤뜰에 갖다 버려라.” 그러자 까막까치가 날아와서 한 날개로는 깔아 주고 한 날개로는 덮어 주며 아기를 보살폈다. 오구대왕은 다시 명하였다. “여봐라, 내일 아침에 용왕님께 공주를 보낼 것이다. 아기 넣을 옥함을 짜 두어라.” 길대부인이 진주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정 버리려 하시거든 아기 이름이나 지어 주십시오.” 무심한 오구대왕의 답변. “버렸다, 버렸으니 바리데기로 하라.”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는 중에 바리데기를 넣은 옥함은 까치여울 피바다를 건너 동해바다 태양서촌에 이르렀다. 다행히 비리공덕 할미와 할아비가 발견하여 꽃처럼 아름답게 키웠다. 그러나 바리데기의 나이 십오 세가 되던 해.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은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깊은 병을 얻었다. “내 어찌하면 낫겠는가?” “버린 아기를 찾아 들이시고, 저승의 생명수를 구해 와서 잡수셔야 낫습니다.” 한 신하가 죽기 살기로 찾아 나서서 바리데기를 모셔 왔다. 문제는 생명수. 신하는 물론이고 편하게 자란 여섯 공주 모두 생명수를 구해 오길 주저했다. “어마마마 배 안에 열 달 들어 있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소녀가 가오리다.” 버려졌던 공주, 바리데기의 대답이었다. 바리데기는 산 사람의 몸으로 저승엘 갔다. 생명수를 지키는 무상신의 요구로 물 삼 년 길어 주고, 불 삼 년 때어 주고, 나무 삼 년 베어 주고, 결혼하여 일곱 아들도 낳아 주었다.

드디어 생명수를 얻은 바리데기. 그러나 불라국에 도착하여 보니 부모의 상여가 나가고 있었다. 깜짝 놀라 관 뚜껑을 열고 생명수를 부모의 입에 흘려 넣으니 일시에 부모가 회생하였다. “너에게 무엇을 주랴? 나라의 반을 주랴, 재물을 주랴?” “나라도 지녀야 나라이고 재물도 지녀야 재물입니다. 부모 슬하에 호의호식 못 하였으니 죽은 영혼의 극락왕생을 돕는 신령이 되고 싶습니다.” 죽는다는 건, 호의호식 못 하는 슬픈 영혼이 되는 길이다. 하물며 불행하게 살다가 죽은 영혼임에랴! 버려진 아이의 다른 이름, 바리데기. 삶으로부터 문득 튕겨져 나간, 불쌍하게 버려진 영혼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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