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에 없이 강력해진 美日동맹, 한국외교 기로에 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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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에게 한국 기자들이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였다. 카터 장관은 “사드는 아직 생산 중이어서 배치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말로 민감한 문제를 피해 갔다. 그는 미국이 일본 편에 서 있다는 한국의 불안을 의식한 듯 “아시아 지역의 역사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알고 있다”며 “당사국 간 화해와 치유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對韓)방위공약을 재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제 방한 목적을 시사한 발언은 따로 있었다. “한반도의 억지력과 준비태세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 안보를 위한 첨단전력 배치계획을 강조하고 “이 때문에 이 지역 동맹관계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한국이 사드에만 관심을 쏟는 사이 미국은 ‘과거에 없이 강력한’ 미일동맹을 구축하고, 여기에 한국을 넣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할지 어떨지를 가늠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에 맞춰 미국과 일본은 27일 워싱턴에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에 정식 합의한다.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는 중국이 공통의 경계 대상으로, 방한 전 일본을 찾은 카터 장관은 “가이드라인 개정이 아태지역뿐 아니라 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인 28일 아베-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과 29일 미 상·하원 합동연설은 절정에 오른 미일동맹을 과시하는 역사적 이벤트다. 일본 총리로서 처음 합동연설대에 선 아베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것인지는 한국과 중국의 관심사이지, 미일 양국의 주요 어젠다가 결코 아닌 것이다.

한국이 안보 면에선 미국, 경제 면에선 중국을 중시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을 고수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카터 장관은 6일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새 국면’ 주제의 연설에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TPP 통과는 내게 또 다른 항공모함처럼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서 동맹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논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어제 “미국과 일본이 동맹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미일 노선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으려고 진지하게 궁리하고 있으나 앞으로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말하기 어렵다”며 한국을 위협했다.

한국은 외교안보의 통합성을 잃은 단편적인 대미, 대중, 대일 외교의 틀을 뛰어넘어 동북아와 세계정세를 꿰뚫어 보는 전략외교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제로섬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한일 간 긴장이 커지면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상쇄할 수도 있는 현실이 됐다.

국가와 국익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가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엔 치밀하게 대응하되 경제, 안보 면에서의 협력은 계속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미일 안보체제는 일본의 독자적 군사대국화를 견제하는 기능이 있으므로 한미동맹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 한국 외교가 미중일의 세계전략을 제대로 읽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과거에 없는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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