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투수는 구속 10km에 야구인생을 건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10일 05시 45분


구속과 제구력을 모두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삼성 윤성환(왼쪽), KIA 양현종 정도만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구속과 제구력을 모두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삼성 윤성환(왼쪽), KIA 양현종 정도만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투수들의 영원한 화두 구속과 제구력

훈련 통해 늘릴 수 있는 구속 5km 안팎
제구 좋은 투수, 점 겨냥한 투구 훈련도
볼 빠르면 스피드 과신, 스킬 습득 더뎌
제구력 위주의 투수들이 더 오래 생존

구속과 제구력은 투수들의 영원한 화두다.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늘 싸우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다. 물론 강속구와 제구력을 모두 갖춘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멀게는 해태 선동열과 롯데 최동원, 가깝게는 LA 다저스 류현진과 한신 오승환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특급투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투수들이 매일같이 조금이라도 더 빠른 공을 던지고, 하나라도 더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꽂아 넣기 위해 고민하고 땀 흘리는 이유다.

● ‘하늘의 선물’ 구속, ‘노력의 산물’ 제구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지도자들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제구력을 택한다. 이유도 간단하다. “실제 경기에는 제구가 되는 투수가 나설 수 있어서”다. 그러나 직접 공을 던지는 선수들은 여전히 강속구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굴곡진 야구인생을 거친 한 투수는 언젠가 “구속 10km를 늘릴 수 있다면, 남은 인생 가운데 10년을 포기해도 좋다”는 심경을 토로했을 정도다. 제구력은 노력으로 좋아질 수 있지만, 강속구는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훈련을 통해 늘릴 수 있는 구속은 대부분 5km 안팎으로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축이 되는 발을 중심에 두고 반대쪽 발을 얼마나 앞으로 멀리 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투수교과서’를 집필했던 넥센 손혁 투수코치는 “다리를 넓게 벌리면 벌릴수록 추진력이 생겨 속도가 늘어나는데,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의 근력을 키우면 다섯 발 벌리던 것을 여섯 발까지 더 딛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명투수 출신인 정민철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구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팔 스윙을 더 빠르게 하려면 지지대가 되어 주는 몸의 근육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며 “하체는 물론이거니와 등 쪽의 근육도 구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 차우찬이 바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구속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성공사례다. 고교 시절 직구 구속이 시속 140km대 초반을 맴돌았던 차우찬은 입단 당시 68kg이었던 체중을 20kg 가량 늘리면서 구속도 시속 150km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불면서 허리와 엉덩이 근육의 회전력이 좋아진 덕분이다.

물론 제구력을 키우는 데는 더 정교하고 섬세한 노력이 수반된다. 손 코치는 “기본적으로 공을 많이 던지고, 불펜에서부터 공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던져보는 게 필요하다”며 “제구가 좋은 투수들은 공을 던질 때 박스(스트라이크존)가 아닌 점이나 선을 겨냥하면서 던지는 훈련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역투수 가운데 최고의 컨트롤을 자랑하는 삼성 윤성환은 한때 네트에 사각형 모양의 박스를 그려놓고 일부러 네 개의 모서리를 향해 공을 던지는 훈련을 반복했다. 집요하리만치 정교한 제구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투수 톰 글래빈은 불펜 양쪽에 빨랫줄 두 개를 가로로 팽팽하게 묶어 놓고 끊임없이 줄의 높낮이를 조절해가며 훈련하기도 했다.

정 위원은 “경기 중 위기 상황에서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강한 마인드도 필요하다”며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심리적으로도 강한 투수”라고 덧붙였다.

● 윤성환·윤석민·양현종이 모범사례인 이유

많은 투수가 구속과 제구력을 모두 늘리기 위해 애쓰지만, 둘 다 갖춘 투수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손혁 코치는 “볼이 느린 투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제구가 필수이기 때문에 제구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빠른 공을 가진 선수들은 자신의 스피드를 믿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창시절부터 제구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고 분석했다. 정민철 위원도 제구력 좋은 강속구 투수가 드문 데 대해 “자신의 스피드를 지나치게 믿다 보면 다른 기술에 대한 절실함이 떨어지고, 아무래도 손으로 스킬을 습득하는 능력이 더뎌진다”며 “강속구만 믿는 선수는 나중에 구속이 떨어졌을 때 극복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제구력에 초점을 맞추는 투수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역선수 가운데 다른 투수들이 교과서로 삼을 만한 모범사례는 누구일까. 손 코치는 삼성 윤성환, KIA 윤석민과 양현종을 ‘톱3’로 꼽으며 “양현종은 원래 빠른 볼로 유명했지만 거듭된 노력을 통해 제구까지 좋아졌고, 윤성환은 제구력이 워낙 좋은데 구속도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도 “윤성환은 제구와 경기운영 면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투수다. 좋은 투수로 롱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제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잠실|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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