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그 강을 건너기 전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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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한바탕 춤과 소리가 어우러지자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싶은지 옆 상가(喪家)에 왔던 문상객들까지 고개를 빼고 기웃거렸다.

지난 목요일 밤이었다. 전북 남원 권번(券番)의 예기(藝妓)였던 춤꾼 조갑녀 선생이 93세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전국의 춤꾼과 소리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행여 자식들에게 흠이 될까 봐 춤을 숨기고 살아온 고인의 마지막 길을 어차피 눈물로써 되돌릴 수 없다면 소리와 춤으로 배웅하는 것이 맞춤한 일인지 모른다. 마침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대형 사진이 어리광 부리듯 춤과 노래를 풀어 놓는 후배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진옥섭 씨의 사회로 시나위와 남도소리, 김경란의 살풀이춤에 이어 하용부 이정희 박경랑의 3인무,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졌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녀 또한 춤꾼으로서 어머니의 살풀이춤을 전수한 여섯째 딸 정명희 씨가 하얀 소복을 입은 채 그간 어머니에게서 배운 춤을 펼쳐 보였다. 딸이 어머니 사진 앞에서 추는 마지막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하고 애틋했다. 게다가 인간문화재 정영만 선생의 구슬픈 구음(口音)이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노름마치의 마지막은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었다. 생전에 고인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지라 그의 ‘귀천’과 ‘봄날은 간다’는 더욱 애달프고 헛헛했다. “누가 먼저 갈래? 우리가 품앗이로 걸판(거방)지게 놀아줄 테니.”

판이 끝나자 농이 오갔다. 경남 거제와 밀양에서 먼 길 올라온 인간문화재 정영만 하용부 선생은 가락 몇 마디, 춤사위 몇 번 내려놓고 다시 그 먼 길을 되짚어 그 밤에 내려간다고 했다. 이쯤 되면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이다. 생생한 삶은 저잣거리에 있듯 진짜 공연은 무대 아래에 있음을 실감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조갑녀 선생 댁을 찾아간 날, 남원 추어탕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셨다. 남원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사셨으니 그분이 끓인 추어탕이야말로 원조일 거라 짐작하며 귀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분의 춤도 그러했다. 괜한 수식어를 거부하는 남도 살풀이춤의 원형, 그것이었다.

이제 선생은 차마 그 강을 건너가셨지만 그날 밤을 기억하는 나의 가슴은 아직도 뜨겁다. 그 강을 건너는 순간까지 동행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뻐근한 일인가.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에 새삼 내 삶을 돌아본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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