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도시락 메시지 통한 싱글맘의 사랑 노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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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던 딸 마침내 “엄마처럼 될래요”
사춘기 여고생 딸 바꾼 이야기 ‘오늘도 약 올리는 도시락’

일본에서 올 1월에 나온 신간 ‘오늘도 약 올리는 도시락’(사진)이 화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반항기를 맞은 딸에게 엄마는 3년간 매일같이 독특한(?) 컬러 도시락을 준비했다. 눈과 입을 붙여 사람처럼 만든 소시지, 캔 커피를 똑같이 흉내 낸 반찬, 케첩 모양의 밥….

친구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지만 딸은 “유치하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했다. 딸이 엄마에게 말을 잘 안 하니 도시락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자 한 것이다.

책의 저자는 도쿄(東京) 하치조(八丈) 섬에 사는 싱글맘 가오리 씨. 남편과는 이혼했다. 2012년 6월부터 시작한 블로그 ‘ttkk의 약 올리게 만드는 도시락 블로그’를 책으로 엮었다. ttkk는 필명이다. 가오리 씨는 책과 블로그 모두에 자신의 본명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굴 사진도 싣지 않았다.

범상치 않은 컬러 도시락을 만들게 된 계기는 차녀의 변화였다. 고교생이 되더니 엄마를 무시하고 말도 건네지 않았다. 가오리 씨는 “딸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시락을 만들었다”고 농담조로 밝혔다. 하지만 정성스레 도시락을 만들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2년 6월 22일 처음으로 블로그에 도시락 사진을 올렸다.

범상치 않은 도시락을 만들려면 오전 5시에 일어나야 했다. 게다가 창의성까지 발휘해야 했다. 글씨는 주로 김을 뜯어 만들었다. 시험 치르기 전에는 ‘공부 잘하고 있어?’라고 밥 위에 적었다. 어버이날 딸이 아무 선물을 주지 않았을 때는 반찬으로 카네이션 모양을 만든 후 ‘늦게도 받아 줌’이라는 메시지를 넣었다.

가오리 씨는 수차례 ‘그만둘까’ 생각했다. 혼자 두 딸을 키웠기 때문에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다. 만약 딸이 “엄마, 오늘은 ○○ 같은 도시락 부탁해”라고 즐겁게 말했으면 분명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딸은 무덤덤했다. 엄마 역시 도시락을 통해 딸과의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전투가 재미있어졌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놀라는 딸의 얼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진 것이다.

올해 1월 27일 드디어 마지막 도시락을 만들었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왠지 슬프다’라고 블로그에 적었다. 밥 위에 치즈 4장을 깔고 김으로 글씨를 썼다. ‘표창장. 딸은 싫어하는 도시락을 남기지 않고 3년간 잘 먹었습니다. 그 인내를 칭찬하며 이 표창장을 줍니다. 엄마.’

신간은 가오리 씨가 그동안 만든 각종 반찬과 밥의 사진으로 왼쪽 한 면을 채웠다. 다른 한 면은 딸과 엮인 에피소드를 수필처럼 적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은 내용이 달랐다. 딸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였다.

“중략….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이상한 행동으로 웃기려고 해 성가시지만 마음 깊이 존경합니다. 엄마처럼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해 준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가오리 씨는 책이 출판된 뒤에야 딸의 메시지를 읽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읽어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고도 했다. ‘계속 만들길 정말 잘했다.’ 가오리 씨가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오늘도 약 올리는 도시락#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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