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스케 뺨치는…‘도전! 이야기할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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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률 5.7대1… 서울지역 열정의 면접

6일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면접장 앞에서 지원자들이 관련 자료를 꼼꼼히 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6일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면접장 앞에서 지원자들이 관련 자료를 꼼꼼히 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미세하게 손이 떨렸다. 침도 자주 삼켰다. 이런 긴장감은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인지…. 심사위원 질문에 답하던 중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흘렀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청춘 이야기가 아니다. 6일 전국에서 열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선발에 지원한 우리 할머니들(만 56∼70세)의 모습이다.

이야기 할머니는 세대 간 소통과 인성교육을 위해 ‘어르신 무릎교육’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겠다는 취지로 2009년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이다. 서류심사와 면접, 교육을 통과한 할머니들은 유아교육 기관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할머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경쟁률이 6.6 대 1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700명 선발에 무려 3975명이 몰렸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6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서울여대 면접장을 찾았다.

○ 열정적인 그녀들

이날 오후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할머니 60여 명은 긴장한 듯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이야기할머니사업단’ 면접 진행 담당자가 “합격은 조상, 하나님, 부처님 덕”이라며 농담해도 웃는 이가 없었다. 분홍빛 한복부터 구치 백, 이탈리아 패션모자까지 한껏 멋을 낸 할머니들은 면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호명되자 얼굴이 굳었다.

총 7개 면접장마다 심사위원(2명)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할머니들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보고 있었다. 심사위원 손에는 △적합성 △인성교육자 자세 △활동 의지 △언어 기본 능력 등 심사 항목이 적힌 면접심사표가 놓였다. 제2면접장에 들어선 황옥순(65) 윤기남(63) 조영진 씨(58)가 지원 동기를 밝혔다. “정년퇴직 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정말 그립습니다. 쿨럭. 양해를 구하겠는데 제가 감기가 걸렸어요.”

제1면접장에서는 한 할머니가 “아이들 인성 교육을 위해 지원했다”고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려 면접이 중단됐다. 잠시 후 그는 “사실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 살다 보니 손자, 손녀 보기가 어려워 외로움이 컸다”고 지원 동기를 털어놨다.

한 심사위원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장기가 있느냐”고 묻자 할머니들은 흉내 내기부터 동화 구연, 연주 등 자신들의 특기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할머니 호칭을 쓰기가 미안하다”는 심사위원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 오늘날 노년층의 자화상

면접을 본 할머니들은 평소 육아를 많이 해봤다고 강조하는 ‘현장파’와 교사, 교수 등 경력으로 교육 관련 이론을 줄줄 이야기하는 ‘이론파’로 나뉘었다.

할머니들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한 할머니가 “동화구연 학원을 다녔다”고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는 “난 마술로 눈길을 끌겠다”고 응수했다. 이야기 할머니에는 재수, 삼수, 심지어 5수한 할머니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현장 교사 등과의 화합을 위해 인품이 합격의 중요한 기준이고, 매월 동화 한 편(A4용지 3장)을 외워야 하므로 건강과 암기력도 필수다.

면접을 끝낸 할머니들은 열정 이면의 인간적 욕구와 어려운 경제 현실도 호소했다. 김모 씨(60)는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 손녀들과 ‘자소서’ 작성법, 면접 의상 등을 이야기하면서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봉사를 통해 자아를 찾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 씨(62)는 “몇 년 사이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다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박모 씨(64)는 “주 2, 3회(매회 1시간 20분) 활동을 하면 한 번에 3만5000원이 지급된다니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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