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를 분재정원으로… ‘제주 愚公’ 中 교과서에 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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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정원’ 가꾼 성범영 원장
20여년간 돌-흙 15만t 옮겨… 한국 정신문화 상징인물로 소개돼
장쩌민도 감탄 “개척정신 배워라”… 中고위관료들 필수 방문코스로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원장 등이 하나하나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생각하는 정원 제공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원장 등이 하나하나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생각하는 정원 제공
제주 ‘생각하는 정원’의 성범영 원장. 황무지 3만여 ㎡를 아름다운 분재 정원으로 가꾼 성 원장의 이야기가 중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렸다. 생각하는 정원 제공
제주 ‘생각하는 정원’의 성범영 원장. 황무지 3만여 ㎡를 아름다운 분재 정원으로 가꾼 성 원장의 이야기가 중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렸다. 생각하는 정원 제공
제주에서 황무지를 분재 정원으로 가꾼 농부의 이야기가 중국 교과서에 실렸다. 제주시 한경면의 분재 정원이자 유명 관광지인 ‘생각하는 정원’은 중국 런민교육출판사에서 발행한 9학년(중학교 3학년 과정) 교과서 ‘역사와 사회’ 하(下)권에 성범영 원장(76)이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 인물로 소개됐다고 7일 밝혔다. 이 교과서는 9월부터 교재로 쓰인다.

중국 런민교육출판사의 ‘역사와 사회’ 교과서.
중국 런민교육출판사의 ‘역사와 사회’ 교과서.
성 원장은 이 교과서 제5단원 ‘냉전시기의 세계’에 나온다. 한국이 짧은 시간에 고속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성 원장을 개척정신의 표본으로 소개한 것이다.

교과서에는 ‘성범영은 일개 농부의 힘으로 몇 년을 소비해 분재원―정원을 만들었다. 한국의 개척·진취적인 강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상징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20여 년 동안 15만 t의 돌과 흙을 운반해 황무지 3만여 m²를 정원으로 가꾼 내용도 담았다. 성 원장은 1963년 서울에서 셔츠업체 사장을 그만두고 제주에 정착한 뒤 가시덤불로 덮인 황무지를 개간해 분재를 소재로 한 정원을 1992년 개원했다.

생각하는 정원 측은 “중국 중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 상황과 함께 성 원장을 소개한 점은 중국이 한국 문화와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성 원장은 생각하는 정원을 조성하면서 문화와 혼, 철학이 담긴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원을 꾸미는 동안 목과 허리 등을 8번이나 크게 다치고 6번의 수술을 받았다. 머리는 어느새 백발로 변하고 일어선 몸은 구부정해도 정원을 안내하는 그의 발걸음은 늘 경쾌했다.

1995년 당시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 1998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의 방문은 정원과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장 전 주석은 이곳을 다녀간 뒤 “일개 농부가 이룩한 이곳의 개척정신을 배워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번 중국 교과서에 실린 것도 장 전 주석의 방문이 출발점이 됐다. 이후 중국 고위관료들에게는 한국 방문 때 빼놓을 수 없는 관람 코스가 됐다. 중국에서의 초청도 줄을 이었다. 중국 신문 방송 등 언론에 600여 차례 소개됐다. 산의 돌과 흙을 파내 산을 옮기려고 했다는 중국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빗대 한국의 ‘우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미친 놈, 나무가 밥 먹여주나)’라는 소리를 들으며 숱한 고난을 겪었다.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따돌림도 받았다. 금융권에서 분재와 정원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바람에 한때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성 원장은 “정원을 있게 한 제주는 몸과 마음의 고향이다. 정원은 제주의 햇살과 바람, 비와 구름에 사람의 손길을 더한 것이다. 그 속에서 평화는 식물을 바라보면서 너와 나를 이해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정원은 평화의 시작이자 완성이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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