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매일 출근하는 ‘집사변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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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 新풍속도… 사건 수임난에 ‘박리다매식 영업’

올해 초 항소심 변호를 처음 맡은 피고인 접견차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방문한 A 변호사(45). 교도관이 변호인 이름과 수용자 이름을 부르자 플라스틱 유리로 구분된 조그마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접견실에서 이미 다른 수용자들과 변호사들이 마주 앉아 대화 중인 모습은 흡사 집단 소개팅을 연상케 했다.

“제 범죄가 실형 나올 정도는 아닌데 1심 판사가 터무니없이 법정구속을 했어요. 그래도 항소심이 열리면 곧 풀려나겠죠?” 접견 초반 긴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의뢰인(수용자)이 여유롭게 질문을 던졌다. A 변호사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구치소) 같은 방 쓰고 있는 사람이 알려줬어요. 여기 자주 드나든 이가 아무개 변호사를 사면 사건이 더 잘 풀린다던데요.”

주로 구치소에 수감된 재력가 혹은 유력 정치인들에게 서류를 전달하거나 옥바라지하는 이른바 ‘집사변호사’가 최근 변호사업계 불황과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변호사 수가 2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로스쿨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면서 평범한 ‘개털’(돈 없고 연줄 없는 평범한 죄수를 일컫는 은어)들도 집사변호사를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집사변호사는 ‘범털’(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를 가리키는 은어)들의 전유물이었다. 구속 중인 의뢰인을 거의 매일 접견해 말동무가 돼 주거나 외부와의 연락도 대신해 주는 등 일반적인 변호사의 조력 범위를 넘어 사실상 의뢰인의 잔심부름을 도맡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변호사가 접견만을 목적으로 구치소를 드나들며 ‘개털’들을 모으는 박리다매식 영업이 성업 중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개털’보다 금전적 여유가 있는 수용자들은 수임료 2000만∼3000만 원을 내고 선임한 공판 변호사 외에 집사변호사를 별도로 고용해 재판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 용도로 활용한다”고 귀띔했다.

구치소 안에서는 수용자들끼리 정보 공유를 통해 집사변호사를 서로 소개해준다. 지난달 20일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 수용동 앞에서 만난 한 변호사는 “구치소 안에서 형기를 오래 지낸 수감자들이 일종의 브로커처럼 집사변호사들을 새로운 수감자에게 소개한다”며 “소개받은 집사변호사가 계좌 번호를 알려주면 면회 온 가족이나 외부 인사를 통해 입금하고, 입금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집사 임무가 시작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집사변호사 한 명이 적게는 2, 3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까지도 접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용자들이 집사변호사를 통해 얻는 실익은 뭘까. 지난해까지 15년간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했던 법무부 교정 관계자는 “수용자들이 수감시설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심심하니까 변호사 접견을 핑계 삼아 나와서 쉰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형사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방어권, 변호인 변호권 보장을 위해 변호인 접견은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과시간 내 접견 시간·횟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법무부 교정 관계자는 “변호사 접견실은 피고인과 변호사 단둘만 있는 데다 일반 면회실과는 달리 교도관 참석이나 녹취가 불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지난달 서울구치소는 초콜릿과 사탕 등을 수용자에게 몰래 건넨 변호사를 징계해 달라며 서울변호사회에 징계신청서를 제출했고, 서울변회는 이 변호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법인 더펌의 신종범 변호사는 “변호인 접견권은 형사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제한인 까닭에 소수의 변호사가 다수의 수용자를 접견한다고 해서 막을 길이 없다”고 전했다. 신 변호사는 “특정 수용자가 접견실을 차지해 막상 접견이 필요한 다른 수용자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변호사#집사변호사#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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