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쉬운 수능’ 위해 대학에 자율권 준다는 건 본말전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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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할 뜻을 밝혔다.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되, 이로 인한 변별력 상실 문제의 해소를 위해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주는 방안을 공론화하도록 비서실에 지시했다. 대학입시 통제에 급급해 온 정부가 자율권을 언급한 것은 대입 정책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역대 정부는 사교육비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대입 본고사와 기여입학제 등을 강력히 반대해 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 B형 만점자 비율이 4.30%에 이르는 등 ‘물 수능’ 논란이 일어났는데도 계속 ‘쉬운 수능’을 내겠다는 교육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육부는 2018학년도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최근 언어 수학 등 다른 수능 과목에도 절대평가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사실상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겠다는 얘기다.

상위권 대학에서는 “뭘 보고 학생을 뽑으란 말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능 만점자가 1등급 비율(4%)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수능 성적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정시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수능 문제 하나 맞고 틀림에 따라 당락이 갈리고 인생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쉬운 수능 기조가 유지되면 응시생들의 실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학별 고사가 불가피해진다.

수능은 이명박 정부에서 ‘물 수능’과 ‘불 수능’을 오락가락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물 수능’을 밀어붙이고 있다. 시험을 어렵게 내면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인식에서다. 그러다 보니 교육방송(EBS)의 수능 강의 중에서 70%를 그대로 출제하는 괴상한 시험이 됐다. 수능의 성격이 학생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지, EBS 교재를 틀리지 않고 푸는 건지 헷갈린다. 이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본말전도(本末顚倒)다. 문제를 그냥 덮자는 것이 아닌가. 선진국에서는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는 일이 없지만 한국은 현재의 고교 1, 2, 3학년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능을 치르게 될 정도로 혼란스럽다. 정부는 대학에 선심 쓰듯 찔끔찔끔 자율권을 주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라 입시를 대학에 전적으로 넘겨야 한다.
#수능#입시 자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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