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약 복용 중단하면 재발위험 3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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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치료 국내 현실은

부작용이 많다’ ‘중독될 수 있다’ 식의 정신건강의학과 처방 약에 대한 편견이 정신건강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약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질환도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며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부작용이 많다’ ‘중독될 수 있다’ 식의 정신건강의학과 처방 약에 대한 편견이 정신건강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약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질환도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며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20대 여성 최모 씨는 미국 대학 유학 시절부터 우울증과 조증이 함께 있는 조울증을 겪었다. 감정 기복이 일상생활을 저해할 정도로 심했다. 예민하다 보니 주변 사람과의 다툼이 잦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 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항우울제와 기분조절제를 복용하면서 증상이 완화됐다. 국내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공부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증상이 나아지자 가족과 친지로부터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 약이 아닌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증상이 나아졌는데, 굳이 약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한 최 씨는 2주 만에 다시 불면증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받은 약만 아니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수면제에 의지했다. 하지만 내성이 강한 수면제도 듣지 않게 되자 초조해졌다. 결국 일주일 정도 잠을 이루지 못한 최 씨는 충동적으로 수면제를 40알가량 먹고 정신을 잃어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다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시작한 최 씨는 “항우울제를 6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하라는 의사의 처방을 무시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다.

○ 정신질환 치료 ‘임의 중단’ 위험

최 씨처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했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전국의 만 20∼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의 54.9%는 의사의 지시 없이 임의로 약 복용을 끝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지시로 치료를 종결하는 경우는 28.6%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약을 끊는 것은 감기약을 그만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 행위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항우울제를 최소 4∼5개월, 길게는 1∼2년 동안 꾸준히 복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1∼2개월 약을 복용한 후 우울, 불안 증세가 호전됐다고 해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재발 위험성이 2, 3배 높아진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은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다. 다수의 질환은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충분히 정상 생활이 가능하지만 임의로 약을 끊으면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 임의 중단의 위험은 최근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독일 저먼윙스 항공기를 고의로 추락시킨 조종사도 임의로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울증이 재발하면 완치가 점점 어려워진다. 우울증이 3번 이상 재발했다면 차후 다시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70∼80%에 이른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등 정신건강 질환은 처음 생겼을 때 완전히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증세가 다소 나아진 이후에 유지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재발하게 되고 우울증이 만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처방 약 중단하고 수면제 의지하는 게 더 위험


환자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오래 먹으면 가족조차 “너는 의지력이 약하다” “약은 조금만 먹고 의지로 이겨야 완치된다” “약을 오래 먹으면 중독된다”라는 지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항우울제, 기분조절제, 항정신성약물 등은 중독성이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은 약을 거부하고,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수면제에 의지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수면제, 안정제 등은 일부 내성이 강하고 중독성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편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설문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적 진료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 응답자의 42%(420명)는 지금까지 살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을 정도의 문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30%(133명)에 불과했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정신건강 질환은 이제 고혈압 당뇨병처럼 약으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해졌는데,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상식 때문에 치료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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